그날의 고통, 아름다운 선율로 잊게끔…

"아직 '그날'의 트라우마로 신음하고 있는 미국민들에게 평화의 선율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재미 한인 음악인들이 9·11 테러 1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연다. 워싱턴 인근의 한인 음악 전공자 39명으로 구성된 '워싱턴 한인 심포니 오케스트라'(WKSO·단장 이경신)는 다음 달 11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9·11 10주년 평화 콘서트'를 개최한다.

WKSO는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신(45)씨가 2002년 창단했다. 이 단장은 이경미(피아니스트)·경신·경진(첼로이스트) 세 자매로 구성된 '경(京)트리오' 멤버다. 이 단장과 단원들은 창단행사로 워싱턴의 제퍼슨 기념관 앞에서 9·11 1주년맞이 '추모 촛불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2000여명의 미국민이 촛불을 들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고, 연주가 끝난 뒤엔 WKSO 단원들의 손을 잡고 "미국인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줘서 무척 고맙다"고 했다. 이 단장은 "그때 단원들과 '9·11 10주년 때도 이들을 위해 연주하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올해 콘서트 준비 과정에서 미국인들의 협조가 줄을 이었다. 당초 케네디센터 측은 "9·11 당일에는 대관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경영진 측이 콘서트 취지를 전해 듣고서는 사과의 뜻과 함께 홀을 내줬다. 워싱턴 지역 3개 공항을 총괄하는 메트로폴리탄공항청의 존 포터 청장은 1만달러를 쾌척했다. 미국 최고 피아노회사인 스타인웨이(Steinway)는 버지니아주 매클린에 있는 연습홀과 피아노를 무상으로 얼마든 쓰라고 했고, 지역 제과업체는 연습 때마다 간식거리를 제공했다.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준비과정에서 뭐든지 돕겠다"며 손을 걷고 나섰다.

이 단장은 "창단 공연 때는 단원들 요기를 위해 김밥 150줄을 손수 말아 갖고 갔는데, 지금은 미국 사회에서 많이 도와줘 음악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했다.

콘서트 수익금은 전액 9·11 때 희생된 미 국방부 직원 유족을 위한 펀드에 기부하기로 했다. 국방부 측은 이 뜻을 전해들은 뒤 "많은 인원이 콘서트에 참석하도록 돕겠다"고 알려왔고, 이 단장은 군 관계자들에게 티켓을 무료로 제공했다.

콘서트는 당초 '추모' 콘셉트로 예정했으나 '9·11을 배후 주도한 테러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미 사살됐으니 좀 더 미래 지향적으로 가자'는 안팎의 의견을 반영해 '평화 콘서트'로 바꿨다. WKSO는 콘서트에서 '아메리카 더 뷰티풀'을 처음 연주하고, 작곡가 피터 조(한국명 조상욱)씨가 애국가와 미국 국가를 접목해 만든 '미국에 평화를(Peace on America)'이란 곡을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