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56) "아모리 추아(醜兒)라도 모조리 서시(西施)로"

"세상에 수업는 주름살 자핀 눈이여 그대들은 걱정할 것이 업다. 그대들은 미인제조 주식회사의 문을 두드리면 그만이다." 1934년 4월 14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이색지대 탐방 시리즈 세번째 '미용원(美容院)' 방문 기사의 결론이다. 제목은 훨씬 도발적으로, '아모리 추아(醜兒)라도 모조리 서시(西施)로' 만들어 주는 곳이라고 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숨기는 것처름 수그리고 달려드러온 얼골들은 의자에 기대서 비누물과 '아라이꼬(가루비누)'에 씨끼고 나서, 화장수 '크림'을 칠한 다음에 물분 혹은 염분 고염분을 발르고, '파프(찜질팩)'에 무수히 어더맛고 그 다음에는 연지 '구찌베니(입술연지)' '마유즈미(눈썹칠)'까지 부치고는 아주 드러올 때와는 딴 판인 서시가 되여 머리를 추어들고" 회사 문을 나서게 만드는 곳이었다.

기자가 찾은 곳은 조선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미장원인 화신백화점 '미장부'. 주인 오엽주(吳葉舟·일명 二格)는 평양여고보 출신으로 잠시 교사를 지낸 바 있는 엘리트 여성으로, 조선인 첫 화장사 면허증도 소지한 일본 '송죽(松竹) 키네마' 소속 영화배우 출신이었다.(1928년 9월 21일자) 일본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잠시 집안일로 귀국했을 때는, '고토(故土/고향)에 봄을 차저온 오엽주양의 기염 / 이역(異域) 영화계의 고성(孤星) / 스터듸오의 생활과 최근의 감상'이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1929년 2월 17일자)가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1933년 화신상회(화신백화점)의 초빙으로 미장부를 개설했던 것.

화신 미장부는 장안의 화제였다. 잡지 삼천리는 이 '미인제조실' 참관 후, "화장하는 솜씨가 놀나워서 아무리 호박가튼 못난 녀성이라도 오양의 부드러운 솜씨에 한 번 거처 나오면 금시에 분두지변하여 나�t 되듯 절대가인이 되어 나온다"고 했다.(삼천리 1934년 8월 1일자)

화신미장부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935년 1월 불이 나면서 폐장되고, 오엽주는 미용술 연구를 위해 도일했다. 이어 조선인이 운영하는 한청(韓靑) 미용원이 생겨 오엽주의 빈공간을 메우면서, 일인(日人)이 운영하는 조지아(丁子屋), 미쓰꼬시(三越) 미용원에 몰리던 여성들의 발걸음을 끌었다.

그해 말 오엽주도 미용술을 더욱 익히고 귀국해 종로 2가 영보빌딩 4층에 '엽주미용실'을 열면서, 서울에 '미장원'이 초스피드로 늘어났다. '근래 신부는 반드시 미용실을 다녀가야 할 줄 알게 되어 남편될 사람과 미용실문을 두드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물건 사는 데 일전이전 다토는 부인들이 미용실에선 일체 그런 일이 없을 정도'로 여성들이 자기 몸에 투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용원은 당국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무자격 이발사들이 늘면서 "손에게 몹시 고통을 주거나, 손의 머리를 대머리로 만드는 무서운 폐단"이 생기면서 '이발영업취체규칙'이 제정(1924년 8월 18일자)된 것처럼 미용원이 급증하고 민원이 늘자 1936년부터 '이발영업취체규칙'의 규제를 받도록 한 것이다.(1935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