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발가락’으로 수술하는 외과 의사

외과 의사가 발가락으로 수술한다면 믿으시겠는가. 무슨 '엽기 의술'이 아니다. 실제로 있는 일이다.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흉부외과 의사 A씨는 엄지발가락으로 병든 폐를 잘라내고, 동맥경화에 걸린 심장 혈관을 능수능란하게 떼고 붙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사연은 이렇다. 전문의 경력 18년째이던 두 해 전, 그는 왼쪽 엄지손가락 손톱 밑에 까만 점이 생겼다. 처음에는 어딘가에 부딪혀서 생긴 피멍인가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되레 크기가 조금씩 커지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조직 검사를 받아보니, 흑색종이었다. 흑색종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내는 세포에 생기는 암(癌)이다. 피부에 발생하는 암 가운데 악성도가 가장 높고,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다른 장기로도 퍼진다. 이때는 엄지손가락을 절단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다. 하지만 손으로 먹고사는 '칼잡이' 외과 의사에게 엄지를 잃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치명적이다. 열 손가락 어디를 깨물어도 똑같이 아프지만, 손 기능 기여도에는 차이가 난다. 엄지가 40%, 검지는 25%, 중지는 20%, 약지는 10%, 소지(小指·새끼 손가락)는 5%이다. 즉 엄지를 읽으면 손가락 기능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가 엄지 결손 해결책을 찾아 나선 사람은 손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대구 더블유(W)병원의 우상현 원장이었다. 성형외과 의사인 우 원장은 엄지 절단 환자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진료하는 마이크로(micro) 수술 전문 의사다. 우 원장의 치료법은 엄지 절단 자리에 엄지발가락을 떼어내 붙이는 수술이다. 그 수술 덕에 A씨는 예전에 했던 모든 술기(術技)를 이제 엄지발가락을 사용해 동일하게 하고 있다. 발톱이 손톱 되고, '새 엄지' 등에 굵은 털이 좀 난다는 것과 주민등록상에 엄지 지문을 다시 등록하는 것 외에는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병원으로 복귀한 A씨는 정교한 '발가락 놀림'으로 봉합사를 현란하게 묶는 수술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우 원장에게 보냈다. 발·손 이식 전문 의사에게는 최고의 '감사 선물'이다. 여성 환자 중에는 '엄지발가락'으로 스웨터를 손수 짜서 보내는 경우도 있단다. 현미경을 보면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0.1㎜ 굵기의 손가락 혈관을 잇는 우 원장의 정교한 손놀림이 수지 절단 환자의 손을 살리는 것이다.

'일손'이 필요했던 과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일하다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한국인 사이에 그런 '외상(外傷) 손' 환자는 많이 줄었다. 대신 앞에서 언급한 의사 A씨처럼 '질병 손'이 늘었다. '외상 손'의 상당수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50만 외국인 이주 노동자로 옮아갔다. 우리 사회의 묘한 단면이다.

또 칼질, 물질, 걸레질 등 끝도 없는 집안일을 주부 손이 도맡아 하던 시절을 거치면서, '아줌마 손 환자'가 많아졌다. 중·장년 여성의 손 저림증 대다수는 이른바 '말초혈액 순환 질환'이 아니고, 오랜 기간 손을 지나치게 많이 쓴 탓이다. 손목 인대와 힘줄이 부으면서 손으로 들어가는 손목 신경이 눌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골프 인구 300만명 시대가 되면서 골프채를 과도하게 움켜쥐어 생기는 손가락 인대염 여성 환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하니, 손 질병 세대교체 현상이다.

IT 시대를 맞아서는 '사무 손'의 혹사가 문제가 된다. 팔에 힘을 빼고 손을 가볍게 떨어뜨리면 손목은 손바닥 쪽으로 살짝 향하며 자연스럽게 늘어진다. 이게 해부학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이다. 하지만 컴퓨터 작업은 역방향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려면 손목을 손등 방향으로 약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마우스를 만지는 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손바닥 안에 가지런히 모여 있어야 할 수근골 8개가 항상 긴장된 상태로 펼쳐져 있다. 이 때문에 손바닥과 손목에 통증을 느끼는 젊은 남자 환자가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잦아졌다. 손가락질로 소통하는 '스마트족(族)'이 더욱 늘어나면 손가락이 삐는 환자도 증가할 것이다.

이처럼 손에는 그 사람의 일상과 이력, 질병과 건강이 배어 있다. 손등 주름의 깊이는 자외선을 받으며 살아온 햇수와 생활과 근무 환경을 알려주는 나이테이다. 손등 핏줄의 도드라짐 정도는 나이가 들수록 빠지는 피하지방의 양을 말해준다. 손바닥에서 엄지로 이어지는 도톰한 부위, 손바닥 최대 근육인 '엄지 두덩'의 두께는 얼마나 부단히 손을 움직이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어떤 정형외과 원장은 엄지 두덩을 보고 직원을 뽑기도 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의 삶이지만 그 과정은 손에 기록되고 쌓여간다. 그런 의미에서 손을 서로 맞잡는 것이야말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