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걸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남자

지난 2005년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해 처음 경매에 나온 한국 작가의 바다 풍경이 추정가 최대치(5만9000HKD)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인 15만6000HKD(약 2100만원)에 낙찰된다. 그 후로 이 작가는 매년 봄·가을 꾸준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을 내놓았고, 지난해 11월엔 작품이 아시아 컨템포러리 미술 경매 도록 표지를 장식했다. 지금까지 경매 참가 횟수 12회, 출품작 30여점 중 유찰은 단 한 번. 낙찰 최고가는 2008년 5월 41만5500 HKD(약 5700만원)에 낙찰된 '좁은 길'. 강릉 허균 생가 주변의 솔밭을 그린 그림으로 가로 287㎝, 세로 115㎝ 크기다.

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홍콩의 컬렉터 반응이 좋아 국내 작품가보다 크리스티 경매가가 두 배 이상 높은 이 작가는 최영걸(43). 바늘처럼 가느다란 붓에 수묵을 이용해 화선지나 장지에 우리 산수(山水)를 극사실적으로 그린다. "송나라 때부터 그림을 밀도 있게 사실적으로 그려왔던 중국의 전통이 문화혁명을 거치며 사라졌죠. 제 그림이 화교(華僑) 컬렉터들의 마음을 끄는 건 그들이 중국에서는 맥이 끊긴 사실주의적 화풍을 제 작품을 통해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달 23일까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가을을 그린 '추계서정(秋溪敍情)'(2011), 눈 쌓인 오대산의 풍경을 그린 '2월의 소금강'(2011), 구례의 산수유를 그린 '만춘(滿春)'(2011), 청산도 풍경을 흑백으로 그린 '청산도의 오후'(2011) 등 20여점이 나왔다. 멀리서 보면 그림엽서용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화면 속 나무 잎사귀며 바위에 내려앉은 이끼까지 일일이 붓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다.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 후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틈틈이 작업을 해왔던 최영걸은 2005년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화랑 관계자로부터 크리스티 출품을 제의받으면서 전업작가로 들어섰다.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대학 시절 최영걸은 교수들로부터 "작품에 격(格)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나치게 사실적인 그의 화풍이 수묵추상화가 주를 이뤘던 서울대 미대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미전에 눈썹, 손톱, 발톱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여인의 누드를 내놓았다가 결국 형태를 추상화한 그림을 다시 그려서 간신히 졸업했지요."

요즘 그는 중국 송대와 명대 화가들의 그림 연구에 푹 빠져 있다. 2007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처음 중국 옛 화가들의 그림을 실견하고, 그들의 사실주의적 화풍에서 '스승'을 만난 듯한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02)730-7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