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열도에 아무리 K팝이 흘러도 과거사 해결 없인 관계개선 한계"

"일본 열도에 K팝이 흐르고 한류 열풍이 아무리 불어도 정치권의 과거사 해결이 없이 양국 관계 개선은 어렵다."(김진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건립위 위원장)

"일본의 한국병합조약은 일본 침략주의의 소산이며 '당초부터 무효(null and void)'라는 한국측 해석이 양국의 공통 해석이 돼야 한다."(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양국의 '양심'들이 다시 모였다. 101년 전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한 날인 29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는 '한국병합 조약 무효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화해 및 새로운 미래'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1년여 만이다. 양국의 대표적 지식인들로 꼽히는 이들은 작년 5월 10일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은 불의부정한 행위였다." 단호한 선언문에 한국은 물론 일본 지식인도 100명이 넘게 서명했다는 사실은 화제였다. 2단계 서명에서는 한국 590여명, 일본 540여명을 넘어설 정도로 호응이 컸다. 이제 세계 지식인 선언으로 확대를 겨냥한다.

◆이제 세계 지식인 선언으로 확대

공동대표인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개회사에서 "공동선언은 참가자의 약 절반이 역사학자들이고, 보수·진보가 동참했으며, 정부·재계와 무관하게 회비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우리의 행동은 한국 민족주의, 반일(反日) 의식보다 아시아 평화협력 시대 혹은 '시빌(문명) 아시아'의 열린 국제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을 아시아 지식인 공동 선언으로 확대하고 세계 지식인의 지지를 받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발표자인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여대 명예교수는 "일본측 서명자 540명 가운데 역사가가 227명이다. 그 수는 결코 적지 않지만 일본의 국가 의지를 바꾸는 데는 못 미치고 있다"면서 "청일·러일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일본의 조선침략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특집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시바 료타로 원작)을 병합 100년에 NHK가 거듭 방영하는 것이 지금의 일본"이라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발표문에서 "병합조약이 원천 무효라는 점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게 하려면 앞으로도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류 확대만으론 부족

김진현 위원장은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해 기능주의적 접근에 대한 환상을 비판했다. 그는 "흔히 독일-프랑스의 화해와 유럽통합을 모델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양국 지도자들의 '과거'에 대한 확고한 사죄, 전범에 대한 응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가 늘어나면 절로 관계 개선이 된다는 의견이 있지만 정치권의 과거사 해결 없이는 어렵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일본은 지난 3·11 대지진 속에서도 한국의 구호 제의를 거부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한 자존심 유지를 위한 일본의 우월감, 일본 제일주의의 발로는 일본 주류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럴수록 한국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다가와 고 와세다대 객원교수(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대지진 직후인 3월 16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정례 '수요모임'을 지진 희생자 추도 집회로 전환한 것에 감동했다. 할머니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미래의 문을 열기 위해선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중대한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