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들이 20년째 매일 천원씩 모은 이유는…

"동네 길을 막고 불편을 끼치면서 장사하는데 동네 어려운 분들 돕는 건 당연해 해야 할 일이죠."

29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 '청량리쌀도매유통' 앞에서 서울 중랑구 태릉시장 노점상연합회 이준행 회장이 멋쩍게 말했다. 가게 옆에서는 이 회장과 함께 온 김영동(40)씨가 몰고 온 1.5t 트럭에 방금 구입한 10㎏짜리 쌀 25포대를 싣고 있었다.

태릉시장에서 각각 야채 노점을 하고 있는 둘은 이날 새벽장을 본 뒤 쌀을 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다른 날 같았다면 새벽장을 본 야채들을 가게에서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둘은 이날 곧장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주민센터 상담실에는 이날 이들이 전달한 쌀 25포가 '착! 착!' 소리를 내며 차곡차곡 쌓였다.

주민센터는 이 쌀을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등 형편이 어려운 25가구에 전달한다. 태릉시장 노점상들이 매달 한 번씩 동네 어려운 이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쌀을 사다준 게 벌써 20년째다.

이들이 이날 산 쌀은 현금으로 52만5000원어치. 노점상연합회 회장이 매일 오후 시장을 돌며 노점 114곳 중 장사한 곳들을 상대로 1000원씩 걷어 만든 회비 중 운영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을 모아 만든 돈이다. 한 달에 걷히는 회비는 대략 280만원. 지난해에는 회비 3605만원 중 쌀 구입에 626만원을 쓰고 시장 근처 백합·학구·봉화 노인정에 잔치비 125만원을 썼다. 한때는 시장에서 무료 급식을 하기도 했다.

형편이 어렵기는 노점도 마찬가지다. 상인들은 "대형마트가 근처에 계속 생기다 보니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 발길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과일가게를 하는 주이숙(52)씨는 10년 동안 당뇨와 합병증을 앓던 남편이 10년 전 세상을 떴다. 1985년부터 남편과 지금 자리에서 장사를 했지만 남편이 병을 앓으며 벌써 20여년째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오전 9시에 나와 새벽 1시까지 휴일도 없이 장사를 하다 작년에는 척추에 종양이 생겨 4개월을 앓아누워야만 했다. 주씨는 노점 바로 앞 2층 건물에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주고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보다도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쓰는 돈이라서 전혀 아깝지 않지. 회비 1000원을 모두 쓴다고 해도 좋은 일에 쓴다면 전혀 불만 없어. 집이 두세 채 있으면 뭐 하나. 힘들게 벌더라도 보람 있게 쓰는 게 중요하지."

이곳에서 20년째 포장마차를 하는 천모(66)씨도 1995년 뇌출혈로 남편을 잃었다. 노점을 하며 아들 둘, 딸 둘을 힘들게 키웠지만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천씨는 "나도 지금 빚이 있는데 솔직히 있는 사람들처럼 많이는 못 보탠다"며 "그래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면 한 사람 살리기는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