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원폭 배상문제 국가가 해결 안 나서는건 위헌"

우리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원폭(原爆)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韓日) 간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違憲)이라고 헌법재판소가 30일 결정했다.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 2400여명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양국의 분쟁이 있을 때 외교적 노력과 중재로 해결하게 돼 있는데 정부가 이를 게을리해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6(위헌)대 3(각하)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 3조는 협정 내용에 대한 양국 간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되, 안되면 한일 양국과 제3국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하는 3인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라고 돼 있다.

헌재는 "일본은 배상책임이 없다지만 우리 정부는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분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배상 청구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사후적(事後的)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헌재는 또 "정부가 '외교관계의 불편' 등 불분명한 이유로 피해 구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실현되지 않은 데는 정부 책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며 물질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다"며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런 점에서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개인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할 권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강하게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이런 정부를 향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라'고 한 것이다. 각하(却下) 의견을 낸 재판관 3명까지 "피해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국가적 노력을 다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했다. 헌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미 하원 결의안(2007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2008년 6월) 등을 거론하며, "일본이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했다. 헌재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하고 필요에 따라선 중재위 회부도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법조계는 헌재가 '시한(時限)'을 못박지 않았기에 실제론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부의 입지도 좁다. 더욱이 일본에선 이날 "일본에는 전범(戰犯) 자체가 없다"는 발언으로 유명한 극우 성향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주당 대표가 신임 총리로 지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측에 헌재 결정을 전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실제 배상이나 배상을 위한 협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며 "중재위 회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