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생부와 양부

레슬리 킹 주니어의 아버지는 돈 많은 금발 미남이었지만 걸핏하면 아내를 때렸다. 신혼 첫날부터 신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이에게 미소 지었다며 손찌검을 했다. 킹의 어머니는 킹이 두 살 때 남편을 떠나 미시간주 페인트상 제럴드 R 포드와 재혼했다. 포드는 킹에게 성과 이름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사랑을 쏟았다. 제럴드 R 포드 주니어는 의부를 생부로 알고 자라 미식축구를 잘하는 고교 우등생으로 컸다.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여섯 살 포드에게 한 사내가 찾아왔다. 포드와 똑 닮은 사내는 "내가 네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포드를 고급차에 태우고 레스토랑에 가 점심을 사주며 "함께 살자"고 했다. 포드는 거절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부모에게 이날 일을 알린 뒤 다시는 생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포드는 미시간대와 예일 법대를 장학생으로 다녔고 1974년 미국 대통령이 됐다.

▶미혼모 아들 스티브 잡스를 입양한 잡스 부부는 고교도 제대로 못 나왔고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입양 때 잡스 생모에게 약속한 대로 잡스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 모은 돈을 등록금으로 썼다.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할 땐 집 차고를 선선히 내줬다. 차고는 아버지가 차를 고쳐 팔던 부업 터전이었다. 어머니는 차고 청소도 하고 손님도 맞으며 아들의 사업을 도왔다.

▶잡스는 평생 '양부모'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준 잡스 부부를 유일한 부모로 여겼다. 그는 친부모가 나중에 결혼해 낳은 여동생을 20년 전 수소문해 만나 가깝게 지냈다. 그러면서도 친부모에겐 연락하지 않았다.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입양된 미혼모 아들이라고 밝혔다. 생부 압둘파타 잔달리는 이 연설을 보고서야 잡스가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잔달리가 그간 잡스에게 이메일을 보내 보고픈 마음을 전해왔다는 이야기가 보도됐다. 대학원생이었던 잔달리 커플은 잡스를 가졌지만 잔달리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여자 집이 반대해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든 살 잔달리는 "잡스를 길러준 부모가 진짜 부모"라면서도 "아들의 인생에 한 부분이 되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천륜(天倫)과 인륜(人倫),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무게를 달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답기는 어렵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