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채집' 셋이 합쳐 150년… 사연 한번 들어보실라우

◆음반도 듣고 입담도 듣고

세 고수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입담 대결을 펼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이세섭)이 3일 동안 올리는 '반락(盤樂),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들이 발품 팔아 찾아낸 음반을 틀어주며 각자의 '소리 찾기' 사연을 들려주는 독특한 공연이다. 반락(盤樂)은 '음반을 즐긴다'는 뜻. 이번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문화재보호재단은 3인이 각각 선곡한 음반 3종을 제작해 공연 당일 관람객 300명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이보형의 '공릉동 할아버지, 발품의 소리학'(9월 7일), 김호성의 '반세기 보고 들은 국악 50년'(9월 21일), 박찬호의 '인생 60년, 가요와 더불어 60년'(10월 5일) 한국문화의집 KOUS, (02)3011-1720

이 세 사람, 소리 찾아 돌아다닌 시간이 150년이 넘는다. 각자 50년 넘게 음반 찾아 기록 찾아 곳곳을 누볐다. 우리 음악 기록의 '고수'인 이보형(민속악), 김호성(궁중음악), 박찬호(근대 대중가요). 이들이 평생을 발품 팔아 찾아낸 음반과 자료는 고스란히 한국 음악 역사의 생생한 자료가 됐다.

◆공릉동 할아버지, 발품의 소리학

"아따, 늙은이 보고 뭐 하러 무대에 올라가라고 한댜? 내가 그런 데(무대) 올라가면 얘기를 엄청 길게 하거든. 못 끊는다니께. 그래도 재밌게 해보라니까 재롱 한번 떨어봐야지."

빵떡모자를 비스듬히 쓴 '공릉동 할아버지'가 구수하게 말했다. 고음반 학자 이보형(76·한국고음반연구회장).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수많은 민속악 음반을 오랜 세월 발품으로 건져 올린 사람이다. 민요, 판소리, 굿 음악, 남도 소리, 불교 음악…. 유성기 음반부터 현지 조사를 통해 직접 채록한 테이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집한 소리 자료가 서울 공릉동 그의 집안 곳곳에 꽉 차 있다.

국악계 후배들이 선생 집을 방문하면, 그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노끈으로 묶은 유성기 음반 덩어리를 꺼내놓으며 "이건 전주에서 얼마에 구했고, 저건 부산에서 극적으로 찾아냈고"라며 자랑한다.

193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에게 고향은 "전기도, 기차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현장"이었다. "김매기 소리가 1년 내내 들리고, 세시(歲時) 농악이 울려 퍼지고, 마을 주민이 세상을 떠나면 씻김굿을 했다"고 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작곡가 나운영(1922~1993) 밑에서 배우면서 함께 민요 채집을 시작했다.

"나 선생님이 제주민요 현지 조사를 가면 조수로 따라 갔다가 선생님은 비행기로 보내드리고 나는 배 타고 목포나 부산으로 갔다고. 시골 버스를 타고 정류장마다 내려서 유성기 음반을 수집하면, 돌아올 땐 한 짐 가득 됐지."

1974년 문화재 전문위원이 된 그는 하루에도 수십 리 길을 걸으며 촌로들의 노래를 녹음기에 담았고, 돌아오면 그 노래들을 옮겨 적었다. 그는 "최고 명창들의 음악이 담긴 유성기 음반, 이들의 목성음에서 전통음악이 추구하는 발성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걸쭉한 소리, 그거 있잖여. 막걸리처럼 텁텁한 소리 말여."

◆반세기 보고 들은 국악 50년

정가(正歌) 명인 김호성(68)은 원래 대금잡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 권유로 대금을 먼저 잡았다. "손이 작으니 이게 쉽지가 않은 거라…. 다른 애들은 곧잘 연주하는데 나는 1년 동안 손가락만 늘리고 소리도 못내봤지.(웃음)" 그러다 초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이주환 선생을 만나 성악으로 진로를 바꿨다. 스승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가에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자료에 대한 그의 애착은 대단하다. 어려서부터 모은 음악 자료는 박물관급. "내가 지금은 가난한데 어려서는 집이 밥을 좀 먹었어. 소리하는 사람 우리 집에 불러다가 돈 들여서 녹음도 하고, 이것저것 수집한 소리를 음반으로 꽤 만들었어요. 은사들의 육성 녹음 파일을 비롯해 음향 파일까지 많이 모았지." 2009년에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음향자료 413점을 국립국악원에 기증했다.

그는 "좋은 자료라고 모아두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자료를 갖고 연구해서 가치와 의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노래라도 1930년대에 부른 사람, 1940년대, 1950년대에 부른 사람들 소리가 제각각이에요. 연대별로 나누고, 어떤 학문적 차이가 있는지,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는 뭔지 연구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공부를 안 해."

◆인생 60년, 가요와 더불어 60년

앞의 두 사람이 국악 고수라면, 박찬호(68)는 한국 가요사를 집대성한 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인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즐겨 듣던 '우리 노래' SP레코드를 들으며 흘러간 가요를 접했다. 1965년 방문한 한국에서 구입한 음반 2장으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이미자 음반과 흘러간 옛노래 10곡이 담긴 음반이었는데 부모님이 '곡조는 우리가 알던 그대로인데 가사가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알아보니 작사가인 박영호씨가 월북을 해서 노랫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거였죠."

이렇게 시작된 '관심'은 '연구'로 이어졌다. '재일한국학생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접하게 된 한국 신문에서 한국 노래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오려두고, 한국에 드나들 때마다 음반을 사 모았다. 어떤 때는 낭랑하게 불리고, 어떤 때는 살며시 흥얼거려지는 노래. 노래엔 한국 근대사가 녹아 있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시작되는 근대 가요에 격동의 시대를 산 민중의 혼이 깃들어 있듯이.

1978년 1월 6일 도쿄로 향하는 신칸센 열차 속에서 그는 결심을 했다. '한국 근대 가요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보자.' 단순한 가요사가 아니라 근현대 민중이 불러온 노래를 시대의 흐름과 함께 서술한다면, 우리 조상이 살아온 시대의 심정을 고스란히 따라서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해방 이전의 한국 가요에 대한 자료는 음반 광고가 실린 신문을 살펴 수집했고, 국내 신문이 폐간됐던 시절의 자료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경성일보를 통해 찾았다"고 했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교포 신문사인 민족시보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그에게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가요에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퇴 후 지금은 나고야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며 계속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옛 가요의 연대들도 틀린 것들이 많았어요. 당시 '목포의 눈물'이나 '타향살이'는 1920년대 노래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타향살이'는 1934년, '목포의 눈물'은 1935년에 나왔거든요. 1936~1937년 조선일보에 실린 음반 광고를 보고 알아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