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 사들였다 떠드는 건 구식"

"세계 최고의 골프공 브랜드가 이제부터 한국 것이라고 크게 홍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수주의적 애국심은 우리를 구석으로 모는 과거의 산물이에요."

세계 점유율 1위 골프공인 '타이틀리스트'를 만드는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이 회사 본사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페어헤이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각종 골프대회를 한국 선수들이 휩쓸면서 일어난 반감을 떠올려 보면, 미국인의 자존심인 타이틀리스트를 한국 기업이 인수했다고 지나치게 알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한국민 5000만명이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이 진짜 애국"이라고 말했다.

휠라코리아는 지난 7월 20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와 함께 미국 포천브랜드 소유인 아쿠쉬네트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은 12억5000만달러(약 1조3270억원)로, 국민연금과 산업은행 등이 인수금융을 제공했다. 윤 회장은 8월부터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번 인수에 국민연금 2억달러가 투입됐다. 한국 국민이 인수한 셈이며, 내가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으로 일하겠다"고 했다.

회견장에 온 미국 기자들은 휠라코리아가 타이틀리스트 미국 공장을 아시아로 옮기진 않을까 우려했다. 윤 회장은 "계약 전 매사추세츠 뉴베드퍼드 공장을 둘러봤으며, 오래도록 골프공을 만들어온 직원들의 실력이 타이틀리스트 품질에 매우 결정적임을 알게 됐다"며 "공장을 옮길 생각도, 휠라코리아와 합병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패션 브랜드인 휠라의 노하우를 아쿠쉬네트의 골프복 브랜드인 풋조이에 활용하는 방법은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 600명인 아쿠쉬네트는 노조가 없고, 평균 근속 16년이 넘는 충성도 높은 회사다.

윤 회장은 아쿠쉬네트 인수 결정 후 지구를 두 바퀴 돌며 전 세계 매장을 둘러봤다고 한다. 그는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아시아, 특히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중국 공략을 위해 이르면 내년 가을 베이징·상하이 등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후, 중국 프랜차이즈를 확대해 갈 계획이다. 휠라와 타이틀리스트 같은 굵직한 세계 회사를 인수한 노하우에 대해선 "가격 협상에서 밀리는 듯싶으면 '덮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