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 시대의 유산

국립경주박물관의 안압지관 옆에 수묵당과 고청지가 있다. 2007년 6월 완공되어 공개되기 시작한 이곳은 그저 지나쳐 버리기 쉬운, 평범한 한옥과 연못이다. 한옥은 초대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진홍섭 선생의 아호, 그리고 연못 이름은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 선생의 아호를 따서 지었다.

진홍섭 선생과 윤경렬 선생은 본래 경주 출신이 아니다. 모두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으로 비슷한 시기에 경주에 자리를 잡고, 경주의 매력에 빠져 평생 '문화재 애호'에 뜻을 합친 동지였다. 두 사람은 1954년 10월, 전후(戰後) 열악한 환경 속에도 뜻을 모아 '경주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열었다. 당시로선 첨단장비였던 환등기와 영사기가 처음 활용되었고, '경주의 옛날이야기'는 윤경렬 선생이 직접 그린 그림동화로 전쟁에 상처받은 동심을 달랬다. "어떤 명목의 돈도 받지 않는다. 수업 때는 존댓말을 쓴다"는 원칙을 지금껏 지켜온 이 학교는 '대한민국 박물관 사회교육의 효시'로 평가된다.

'경주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은 5000명이 훌쩍 넘는다. 그들은 지역사회와 박물관계·교육계·학계로 진출해 훌륭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스승의 뒤를 이어 어린이 박물관학교의 강단에 서는 이도 있다. 윤경렬 선생과 진홍섭 선생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이제 '수묵당'과 '고청지'로 박물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어쩌면 이 공간이야말로 우리 시대 경주의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까? '경주 어린이 박물관학교' 창립 이듬해 만들어진 교가도 이곳 마당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리라. "하늘도 내 교실/ 땅도 내 교실/ 밝고 푸른 하늘에/ 뻗쳐라 높이…."


9월 '일사일언'은 강임산씨를 비롯해 소설가 이현수씨, 박성태 마가진 편집장이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