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딴청 부리기

〈제7보〉(83~99)=대붕(大鵬)들의 뜻을 참새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프로들 역시 한곳에서 치열하게 펀치를 주고받는 게 보통이지만 때론 서로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포문(砲門)이 쌍방 적진을 향하지 않고 제각기 먼산을 향해 포탄을 쏘아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오늘 기보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그 이면엔 치열한 수읽기와 손익계산, 흥정이 깔려 있다.

우선 83은 오폭(誤爆)이었다. 84로 붙일 곳. 참고1도 1 이하 7까지 된 뒤 백A면 B에 붙여 패(覇)가 된다. 미스블로가 초조감을 불렀고, 그 초조감이 기묘한 변화를 잉태한다. 85는 백이 먼저 이곳을 젖혀 잇는 수를 선수(先手)로 예방하려는 뜻. 하지만 백은 잠시 생각하더니 86으로 빠진다. 좌하귀를 키우면서 하변과 우하귀를 맞볼 심산이다.

흑은 내친김에 87로 붙였고 백도 88로 넘어 90까지 순식간에 교환이 이뤄졌다. 93까지 일단락. 이 수를 생략하면 우하귀에 패가 남는다. 93으론 참고2도 5까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큰 소득은 없다. 여기까지 하변 '딴청 경쟁'의 손익계산은 절묘하게도 균형을 이뤘다는 결론. 94는 급소였고, 98때 99 연결도 당연하다. 자, 선수를 잡은 백은 이제 어디로 포문을 돌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