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바람 날라… 5만명 몰린 청도 소싸움

모래밭 한가운데 850㎏이 넘는 거구의 소가 마주 섰다. 앞발로 모래를 차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맞수 '흑호'와 '신덕산'이 '킁! 킁!' 콧바람을 불어내며 곧 붙을 기세다. '삑∼'하는 휘슬과 함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결투가 시작됐다. 한 발짝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접전 속에 뿔치기, 뿔걸이, 밀치기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싸움 소들의 이마는 어느새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경기 시작 25분이 넘었을 때 '신덕산'이 갑자기 배설물을 내어 놓고 고개를 돌리며 도망을 쳤다. "싸움 소가 배설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는 신호"라는 아나운서의 설명과 함께 경기는 '흑호'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광판에 경기결과와 함께 배당률(단식 1.9)이 나타나자 관중석은 "당첨됐다"는 환호와 "에이∼"하는 탄식이 뒤섞여 술렁였다.

3일 오후 3시 경북 청도군 화양읍 '상설 소싸움경기장'에서 열린 개장 첫 경기 모습이다. 이 경기에서 '흑호'의 승리를 맞힌 관중들은 자신이 건 돈의 1.9배를 받게 됐다. 대구에서 온 박모(52)씨는 "가족과 함께 구경하러 왔다가 대표로 1만원을 걸었다"며 "마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웃었다.

청도군은 올해부터 전통 민속놀이 '소싸움'을 경마처럼 베팅이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고 전용 경기장을 세웠다. 대회를 주최한 한국 우사회는 이날 국·내외 관광객과 주민 등 5만여명이 몰렸다고 추산했다. 청도군 인구 4만7000여명보다 많았다. 청도군 관계자도 "청도 소싸움 역사상 하루 최대 인파"라고 말했다.

1400여대분의 경기장 주차공간은 시범경기가 열린 오전 10시쯤 이미 만원이 됐고, 개장식이 열린 오후 2시부터는 경기장 주변 도로 2∼3㎞가량이 갓길 주차로 북새통을 이뤘다. 입구부터 복숭아와 감 등 청도의 특산품을 파는 노점들도 줄을 이었다. 임시 음식점을 차린 정모(47)씨는 "(전용 경기장 개장은) 군민 모두가 10여년 기다리던 숙원사업"이라며 "앞으로 사람들이 들끓어 지역 경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장 첫날이어서 아직은 베팅에 참가하기보다는 소싸움 자체를 구경 온 사람이 더 많은 듯했다. 외국인도 보였다. 주한미군 마이크 윌슨(41)씨는 "포스터를 보고 한국형 투우를 구경하러 왔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기장 안 1·2층 복도에 늘어선 '우권(牛券)' 판매 창구. 삼삼오오 모여서 안내 직원에게 베팅방법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창구 앞은 우권을 사려는 줄이 이어져 있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 창구의 커튼이 내려지고 인파들은 순식간에 경기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경기 후 사람들은 다시 판매 창구로 모여들었고, 휴지통은 구겨진 우권으로 넘쳐났다. 한국우사회측은 "5경기가 치러진 이날 모두 7000만원의 돈이 걸렸고, 최고 배당률은 1170배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도박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주민 윤모(70)씨는 "안 그래도 농한기에 도박이 성행하는데, 이제 대놓고 도박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재산 탕진하는 농민이 여럿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전문 도박꾼들이 법정 금액을 넘어선 불법 도박판을 벌이지 못하도록 장내 CCTV 등을 통해 감시활동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화서 한국우사회 대표는 "농민들이 소싸움으로 도박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