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결혼식 가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꾹 참지만 딸 생각에 마음속으론 늘 울어"

"전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10년 전 9월 11일 육대진(63)씨는 딸 성아씨를 테러로 잃었다.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채권 거래 회사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일하며 "사무실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며 즐거워하던 25살 된 외동딸이었다.

1980년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네 살이었던 성아씨는 테러 전날 뉴욕을 찾았던 어머니 이경우(60)씨에게 "돈을 많이 벌어 엄마 아빠 일 그만하고 쉬게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엄마를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태워주며 남긴 "맘, 아이 러브 유(엄마, 사랑해요)"가 딸의 유언이 됐다. 이씨는 그날 자신을 안아주던 성아의 샴푸 향기가 여전히 생생하다고 한다.

◆딸 잃고 잡화상 닫아

오하이오주(州) 클리블랜드에 사는 육씨는 4일 전화 통화에서 "딸이 세상을 뜬 후5개월 만에 잡화상을 접었다"고 말했다.

육씨는 "한국 드라마 보고 세 끼 먹으면서 근근이 산다"고 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힘겨워서 가게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엔 몰랐는데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결국 다 딸 자랑, 아들 자랑이더라. 샘도 나고 화도 나는데 장사하면서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고, 그런 얘기는 듣기 싫었다"고 말했다.

10년 전 9월 11일 옆집 사람들이 TV 좀 켜보라고 소리를 쳤다. 첫 번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부딪힌 화면을 보고 아내에게 딸이 일하는 건물이 북쪽 타워인지 남쪽 타워인지 물었다. 잠시 후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육씨는 "그걸 생중계로 보고 말았다. 딸 아이 전화에선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목소리만 나오기에 당장 뉴욕 맨해튼으로 갔다. 성아 사진을 복사한 전단을 정신없이 뿌렸다"고 했다.

딸의 집 침대 위엔 '댄싱 인 헤븐(Dancing in Heaven)'이란 책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고 바닥엔 벗어놓은 옷이 그대로 있었다. 어딘가 병원에 누워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몇 주가 지나서야 건물 잔해와 재로 범벅된 테러 현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아빠 왔다. 성아야'라고 소리를 쳤다"고 했다.

◆"아빠가 진짜 사랑한데이"

육씨는 "그래도 난 미국이란 나라가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년이 넘도록 잔해를 뒤져 딸 아이의 유해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게 참 고마웠다"고 했다.

지난 5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을 때 그의 머릿속엔 '참 잘 죽었다'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는 "누가 죽었다면 아무리 나쁜 사람도 안 됐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누가 죽어서 잘 됐다고 기뻐한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육씨는 딸의 친구들과 딸의 미국 이름을 따서 '크리스티나 성아 육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딸을 알던 사람들이 좋은 뜻에 돈을 조금씩 모으는 것이다. 딸의 대학 친구는 10주기를 맞아 딸 아이를 추모하기 위한 동화를 썼다고 한다.

육씨는 "남의 결혼식에 갈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좋은 날 눈물을 흘릴 수 없으니 꾹 참지만 마음속으론 늘 운다. 딸이 살아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결혼식장에 팔짱 끼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외동딸이라 버릇없어질까 봐 너무 엄하게 키웠어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육성아, 아빠가 진짜 사랑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