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수요부진+SW 중심 패러다임 변화
-위기 때마다 장악력 커졌던 한국 IT산업
-강한 대응력 긍정적…SW 생태계구축 과제
PC·TV 수요 부진과 함께 미국·유럽발(發) 재정위기 후폭풍으로 전 세계 IT업계가 침체기에 빠져 있다. 한해 농사를 좌우하며 성수기 특수를 누려야할 2분기와 3분기에도 실적 호전은 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최악의 불황으로 꼽히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직후에 비해서는 상황이 양호한 편이지만 내년 후 경기 전망까지 불확실한 터라 현 상황은 IT기업들에게 분명 위기다.
과거 우리 기업들은 불황 속에서 특유의 원가경쟁력으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위기를 준비의 시기로 삼아왔다. 그 결과 위기가 지난 후 톡톡한 수확 효과를 누렸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IT불황 역시 ‘독’(毒)보다는 ‘약’(藥)이 될까.
현재 IT업계는 수요 부진과 함께 산업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계기로 소프트웨어(SW) 파워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하드웨어(HW) 부문에서 최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SW 부문에서 취약하기 그지 없는 우리 IT산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배경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위기에 강한 우리 IT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부정적으로 볼 때만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에서 애플을 발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반도체, TV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차세대 제품을 위한 준비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최근 상황을 볼 때 향후 전망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SW 등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SW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우리 IT산업이 장기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D램 독주는 계속…휴대폰 시장 제패도 시간문제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각각 41.6%와 23.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D램 호황기였던 작년 2분기에 비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6.2%포인트가 늘었고, 하이닉스는 1.9%포인트가 증가했다. 스마트폰·태블릿PC에 들어가는 모바일 제품 생산 증가가 주효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전후와 유사한 현상이다. 그 당시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30.5%(2008년 1분기)에서 33.6%(2009년 1분기)로 껑충뛰었다. 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점유율이 18.5%에서 21.1%로 상승했다. 반도체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생산력 측면에서 단계적인 미세공정 전환 로드맵을 따르고 있는 한국 D램업체에게 수혜가 돌아갔다.
키움증권 김성인 애널리스트는 “현재 한국 D램업체와 대만업체의 원가경쟁력 차이가 급속히 확대되어 대만업체들의 생존이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올 4분기 중으로 공급측면에서 감산 또는 퇴출의 변화가 예상되고 삼성전자·하이닉스 실적은 회복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휴대폰 시장 역시 절대강자인 노키아의 몰락으로 세계 2·3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LG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노키아의 점유율은 22.8%에 그친 반면 삼성과 LG는 각각 16.3%와 5.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LG의 점유율을 합치면 노키아와 차이는 1%포인트도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홍원표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세계 휴대폰 1위 도전을 공식화했다.
◆ TV 시장 트렌드 한국이 주도…차세대 디스플레이 ‘AMOLED’도 우리 손안에
TV 시장의 경우 올해 주력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3D TV’에서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NPD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 상반기 북미 3D TV 시장에서 수량 기준으로 각각 53.0%와 8.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럽 3D TV 시장에서도 수량 기준(Gfk 자료)으로 삼성은 47.4%, LG는 9.8%의 점유율을 달성, 올 상반기 유럽에서 팔린 3D TV 2대 중 1대 이상이 한국 제품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한 때 TV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 소니가 한국 경쟁업체들의 약진에 밀려 사업 철수 압박을 받고있다고 전했다. 히타지도 TV 생산을 시작한지 55년 만에 외부 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샤프 역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위탁생산을 검토중이다. 따라서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는 한국 TV업체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LCD에 이어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으로 불리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분야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독보적이다. 세계 1위 AMOLED업체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지난 2분기 시장점유율은 수량기준으로 97.9%에 달한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시장 전망을 보고 생산에 뛰어들고 있지만, LCD와 기술차이로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향후 TV 등 대면적 제품에서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한국 IT의 역사…치열한 ‘따라잡기’의 역사
현재 우리나라 IT 수출 ‘빅3’로 꼽히는 D램 반도체·LCD 패널·휴대전화 중 선발 업체와의 점유율 경쟁을 벌이지 않은 품목은 하나도 없다.
D램은 지난 1983년 삼성전자가 첫 생산한 뒤, 1992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며 일본을 처음 넘어섰다. 이후 단 한번도 일본에 뒤처진 적이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 D램 점유율은 37.5%(아이서플라이)로 부동의 1위다. 일본 업체들이 원천기술을 가진 LCD 패널은 샤프·도시바를 넘기 위해 삼성이 소니와, LG는 필립스와 각각 합작 투자에 나섰다. 지난 2분기 국내 업체들의 LCD 패널 점유율 역시 세계 1위(매출액 기준 53%, 디스플레이서치)다. 휴대전화는 최근 스마트폰 시장 대응에서 한 발 늦기는 했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2위(수량 기준 28.6%, IDC)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을 비롯한 선발 업체들은 정복해야 할 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삼성·LG는 원천기술 부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한 발 빠른 양산투자를 통해 해결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LG는 해외 업체들이 양산 투자에 주저하고 있는 사이 대규모 투자와 치밀한 공급사슬관리(SCM)로 선두를 추격해 왔다”며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한국 전자 업체들의 성공 공식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IT 업계 화두로 떠오른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효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총 20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 1위 애플 2034만대의 턱밑까지 따라 붙었다. 3분기에는 판매 수량에서 애플을 능가할 것이 확실시 된다. 한 동안 고전했던 LG전자 역시 615만대로 전 분기 7위에서 6위로 뛰어 올랐다. 시장분석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LG전자는 2분기 북미 시장에서 3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역대 처음으로 북미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 두 자릿수(11.7%)를 기록하기도 했다.
◆ 위기의 한국IT호(號), 다시 패스트 팔로어 전략…원천기술 확보해야
따라서 한국 최근 구글·애플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한국 IT업체들의 생존 전략 역시 패스트 팔로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 제조업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의 무기가 자본력과 한 발 앞선 의사결정이었다면 최근 진행되는 소프트웨어(SW) 승부에서는 역시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IBM등 글로벌 IT 업체들은 매년 60억달러, 우리돈 6조4100억원 이상을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에 쏟아 붓고 있다. 올해로 창립 100년째인 IBM이 IT 업계 트렌드가 수십번 바뀌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업을 성장시켜온 배경이다. 케빈 리어던 IBM 지적자산 담당 사장은 “IBM은 지난 100년 동안 특허와 발명을 통해 경쟁업체와의 차별화와 혁신을 이루어 왔다”며 “특허 분야의 리더십은 IBM의 고부가가치 비즈니스 전략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