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죽음 관심 없다 나에겐 오직 그림뿐"

"나는 '그림쟁이'다. 그 외에 딴짓을 해본 적이 없다."

5일 대한민국예술원상(미술부문)을 수상한 한묵(97) 화백은 "예술원상이 뭘 기준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딴걸 안 했어. 오직 미술이야"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1955년 제정된 대한민국예술원상은 우리 예술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주어진다. 이날 시인 김규동(86·문학부문), 영화배우 최은희(81·연극·영화·무용 부문)씨도 상을 받았다.

100세 가까운 한 화백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증인이다. 이중섭(1916~1956)의 마지막을 함께 한 동료로 특히 친분이 깊었다.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있던 한 화백은 47세 때인 1961년 프랑스로 가, 50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다. 컴퍼스를 사용해 강렬한 삼원색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주로 그리는 한 화백은 1969년 아폴로호의 달 착륙에 충격받고는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른다. 대체 이 세상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라는 고민에 3년간 붓을 놓았다. 이후 "우주를 가득 채운 에너지를 그리겠다"며 그전의 야수파적 화풍을 버리고 기하학적 추상으로 접어들었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원로 부문 수상자이기도 하다.

기력이 쇠해 대작(大作)은 못 하지만 아직도 붓을 놓지 않고 매일 그림을 그린다는 한 화백은 "난 내 나이도 잊어버린다. 늙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화가고,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한 화백을 옆에서 돕던 부인(79)이 "나이, 죽음,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사람이다. 입버릇처럼 '그림 그리다가 씩 웃고 가면 그만이지'라고 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