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주차장에서 고추 말리는 농민들, 왜

"농사꾼이 도둑놈 단속까지 하려니 참 고달프죠."

경북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 박인엽(57) 이장은 최근 주민들이 농사일을 나간 낮시간 동안 마을의 젊은 사람들과 순번을 정해 순찰을 한다. 농로와 비닐하우스 단지, 빈집 등을 돌며 낯선 사람이 있는지 살핀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을 나가 집을 비운 낮시간에 도둑이 들어 농작물을 쓸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일 서울의 한 마트 농산물 할인 코너에서 발품을 팔고 있던 주부 김모(57)씨는 "요즘은 가격이 비싸 할인 행사가 없으면 채소에 손도 못 댄다"면서 "할인 광고를 따라 떠도는 신세"라고 했다.

우기(雨期)라고 불러도 될 만큼 올여름 비가 잦아 농작물 작황이 부진하면서 농촌에서는 농작물 도둑이 극성을 부려 고달프고, 도시 사람들은 껑충 뛰어오른 가격 때문에 대형마트 할인 코너와 재래시장에서 싼 물건을 찾느라 고달프다.

◆경찰서 주차장에서 고추 말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5일 현재 마른고추 60㎏은 162만원으로 지난해(57만2500원)의 3배 가까이로 폭등했다. 당근 20㎏의 평균 가격은 4만9400원으로 작년(3만2000원)에 비해 1만7400원 올랐고, 20㎏ 감자도 3만1800원으로 작년(2만6950원)보다 5000원 정도 상승했다.

이처럼 농작물 가격이 오르자 전국적으로 농작물 도둑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달 22일 곡성군 겸면에서는 비닐하우스에 널어놓은 고추 54㎏(180만원 상당)을 훔친 절도범 일당이 검거됐다. 지난 2일에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의 부인인 김모(54)씨가 화천군의 비닐하우스에서 말리던 고추 18㎏(시가 50만~60만원 상당)을 도난당하기도 했다.

불안한 농민들은 CC(폐쇄회로)TV나 도난경보기 설치에 나서고 있다. 충북 괴산군 김관채(55)씨는 "100여만원의 마을기금으로 마을 입구에 CCTV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경찰서는 관내 농촌지역 6개 마을에 색상과 로고가 다른 '우리 마을 인식 스티커'를 제작, 차량 유리창에 붙이도록 해 외지인의 차량을 쉽게 구분하도록 했다. 강원도 평창경찰서는 오는 11월까지 경찰서 주차장을 고추 등 농산물 건조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농작물 찾아 발품 파는 소비자들

5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4층 야채 할인 코너에 몰린 주부 10여명은 직원이 물건을 가져다 놓기가 무섭게 배추와 무를 쇼핑카트에 쓸어담았다. 마트 관계자는 "1인당 두 포기만 살 수 있게 제한했는데도 두 시간 만에 100포기 넘게 팔렸다"며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주부들이 할인 정보가 담긴 전단을 들고 몰려왔다"고 말했다.

주부 김옥남(57)씨는 "어제는 다른 마트를 갔는데 할인 행사가 없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며 "마트 가격도 너무 비싸 연근과 우엉, 도라지 등은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구입했다"고 말했다.

주부 장모(30)씨도 "마트에서 '왜 이렇게 비싸냐'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며 "조만간 가격이 싼 재래시장을 찾을 예정"이라고 했다. 성북구에서 수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한다는 오모(33)씨는 "원래 가게 근처의 중간상을 이용했는데 최근 야채값이 너무 올라 원가를 줄이려고 직접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