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부처님 손바닥

〈총보〉(1~164)=이긴 바둑을 분석해보면 내가 잘 두거나 상대가 무너져 주거나 둘 중 하나다. 이 판은 전자(前者) 쪽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성진은 초반 흑이 갈팡질팡 행마를 펼치자 때론 풀어주고 때로는 조여가는 능란한 전술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진짜 장사(壯士)는 꼭 필요할 때만 힘을 쓰는 법. 원성진은 묵직한 주먹을 아끼고도 완승했고 사카이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꼴이 됐다.

시커먼 흑세 속에서 30, 32로 터를 잡은 이후 좌상 쪽 침입군을 44로 살려준 판단력, 48의 급소 공격 등의 수법이 돋보였다. 70, 72의 연결타도 멋졌다. 흑은 제대로 변변한 반격 기회조차 잡아보지 못했다. 119로 참고도처럼 실리 균형을 잡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중앙이 허약해 언감생심이었다.

원성진의 LG배 출전은 14회 때 이후 2년 만이다. 기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런 컨디션이라면 개인 최고 기록인 4강 이상의 성적이 가능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의사(醫師) 출신 늦깎이 프로로 특히 주목받아온 사카이의 행진이 멈춘 것은 아쉬운 대목. 그러나 일본 특유의 미학(美學)으로 흐르지 않고 실전적 기풍을 마음껏 구사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128…121. 164수 끝 백 시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