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巨物 대결

〈제1보〉(1~11)=국제대회는 역시 '아군'과 '적군'이 맞싸울 때 제맛이 난다. 한·한전 보다는 한·중전이나 한·일전이 훨씬 더 흥미롭다. LG배가 라운드마다 최대한 국적별로 분리해 새로 대진 추첨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본란도 이 원칙에 따라 국제전 기보 우선으로 게재해왔는데 종종 예외가 발생하곤 한다. 아무리 1라운드라고 해도 이세돌·박영훈전 같은 '거물' 카드를 도대체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박영훈이 홀짝을 못 맞히자 이세돌이 흑을 택한다. 5까지는 노 타임. 바둑은 여기서부터 거북이걸음으로 바뀐다. 3분 만에 6에 걸치자 7의 바깥쪽 붙임에 무려 9분이 소요됐다. 초반 진행치곤 이례적인 신중함이다. 10의 호구(虎口)에 7분, 다시 11로 씌우는 데 3분이 걸렸다. 뻔한(?) 정석 진행에 웬 장고 교환일까.

과거 흔했던 10까지의 포석이 10여년 전부터 자취를 감춘 것은 11의 압박이 워낙 위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백10 대신 참고도 1로 꽉 잇는 수가 개발되면서 5까지가 새로운 상형(常型)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11까지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백은 이렇게 둘 수도 있다는 '재해석'이 내려진 것. 결단을 내린 두 대국자는 마침내 번개 같은 손길로 정석을 밟아나가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