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준에 맞는 車 엔진금형 74세 이 남자가 빚어냅니다

"쇳물이 주황빛이죠. 아직은 온도가 낮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가열하면 흰색과 노란색이 묘하게 섞인 색이 되는데, 그때가 틀에 붓기 딱 좋을 온도입니다."

인천 송도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인천지역본부. 올해 74세인 윤창병 연구원이 손자뻘인 젊은 연구원들에게 열심히 쇳물의 적정 온도를 설명하고 있다. 생산기술연구원이 확인한 바로 윤 연구원은 현역 최고령 정부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는 1998년 61세로 정년을 맞았지만, 그의 오랜 현장 경험을 대체할 어떤 연구원이나 기계도 없어서 생산기술연구원이 그를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다시 채용했다.

윤 연구원의 전문 분야는 금속을 녹여 틀에 붓고 굳혀 주물 제품을 만드는 주조(鑄造). 주조를 통해 그는 석·박사 연구원들의 연구에 필요한 기계장치를 설계하고, 연구결과를 최종 제품으로 만든다. 연구의 시작과 끝을 그가 맡고 있는 셈이다.

이상목 생산기술연구원 인천지역본부장은 "주조는 금속의 배합 순서나 온도, 공기 흐름, 용해 속도 등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아 자동화가 불가능하다"며 "윤 연구원이 평생 몸으로 익힌 현장 경험이 없다면 그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다 시험해야 해 제품 개발 시간이 한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연구원들은 쇳물을 녹일 때마다 일일이 윤 연구원에게 조언을 구한다. 쇳물을 녹일 때는 전기를 코일에 흘려 섭씨 1500도 이상의 고온을 만든다. 윤 연구원은 "쇳물이 잘 돌지 않으면 전기가 약해 온도가 낮은 것이고, 너무 빨리 돌면 온도가 너무 높아 쇳물 성분이 쉽게 산화된다"고 말했다. 이상목 본부장은 "코일에 전기를 흘리면 회전하는 자기장이 생겨 자석에 쇳가루가 끌리듯 쇳물이 도는 것"이라며 "실제로 온도를 재보면 신기하게도 윤 연구원이 눈으로 보고 말한 온도 그대로 나온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이 주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농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취직자리를 알아보면서부터다. 그는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직업훈련기관인 서울공고 주물목형과에 들어갔다. 그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경성주물제작소에 취직하면서 쇳물을 다루기 시작했다. "당시 주조과장이 나중에 서울대로 간 나형용 교수였어요. 그분 추천으로 강원산업을 거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들어갔습니다."

KIST 주물기술센터가 1989년 설립된 생산기술연구원으로 이관되면서부터 그의 소속도 바뀌었다. 그의 손을 거쳐간 '국내 최초 개발'이라는 수식을 단 제품 목록은 그의 연륜만큼이나 쌓여 있다. KIST 원장을 지낸 고(故) 천병두 박사와 함께 국내 최초로 내열강(耐熱鋼)을 개발했고, 페인트 원료인 알루미늄 분말도 처음 개발해 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그가 요즘 매달리고 있는 분야는 유럽 환경기준을 충족하는 엔진부품 개발이다. 에너지 소비가 적도록 얇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그는 "두께는 3.5㎜에서 2㎜로 줄이면서도 강도는 150% 이상 높이는 어려운 과제"라며 "얇은 부품을 만들 금형(金型)을 만드는 작업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원은 "요즘 자동차 엔진이 좋아진 것도 엔진에서 피스톤이 오가는 부분의 두께를 균일하게 주조한 덕분"이라며 "자동차 엔진 성능이 좋아져 공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 일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