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쓴 덕수궁, 300년 쓴 경운궁'… 이름 전쟁 승자는

'덕수궁이냐, 경운궁이냐.'

사적 124호인 덕수궁(德壽宮)의 명칭을 본래 이름인 경운궁(慶運宮)으로 바꿔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게 좋을까.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지난 4월 한 시민에 의해 "덕수궁의 본래 이름인 경운궁 명칭을 회복해야 한다"는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여론 수렴을 거쳐 문화재위원회에서 명칭 변경 여부를 심의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덕수궁 이름을 원래 명칭인 경운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일부 역사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100년 이상 사용돼 정착된 이름을 바꾸면 혼란만 빚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상당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국가지정문화재 중 '서울성곽'을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꾸는 등 사적 439건의 명칭을 변경해 고시했지만, 덕수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보했었다. 당시 사적분과위원회에서 덕수궁 명칭 변경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경운궁으로 되돌리자"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경운궁은 1611년부터 300여년간 사용된 역사적인 명칭이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갔다가 이곳에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명실상부한 법궁이었다"며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된 것은 1907년 일제의 압력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면서 '이전 황제의 거처'라는 뜻으로 격하시킨 것이므로 원래 명칭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수궁은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란했다가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궁궐 전각이 소실돼 머무를 곳이 없어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私邸)였던 곳을 1593년 임시행궁으로 사용하면서 궁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은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하고 3년 후인 1611년에 임시행궁을 경운궁(慶運宮)으로 명명했다. 고종은 아관파천 후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가면서 대한제국 선포 후 법궁(法宮·임금이 정사를 보며 생활하는 궁궐)으로 삼았다. 그러나 1907년 일제의 압력에 의해 고종이 순종에게 황제위를 양위(讓位·왕의 자리를 물려줌)한 직후 덕수궁으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년 이상 쓴 이름, 덕수궁으로 두자"

하지만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치욕의 역사도 그 자체로 역사 아니냐"며 "석굴암도 원래 이름인 석불사로 다시 바꾸자는 시도가 일부 미술사학계에서 있었지만 실패했다. 100년 이상 사용돼 이미 사회적으로 정착된 덕수궁 명칭을 다시 바꾸면 사회적·경제적 비용만 커지고 혼란을 초래한다"고 명칭 변경을 반대했다.

문화재청은 '덕수궁' 명칭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19~26일)와 문화재청 페이스북(www.facebook.com/chloveu)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후 10월 중순쯤 공청회를 거쳐 11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해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