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자측 요구가 많고 협상관련 보안사항이 잘 안지켜져 힘드네요.”(하이닉스 채권단 관계자)
“채권단이 자신들의 매각 이익만 챙기려 들면 안됩니다.”(하이닉스 매수자측 관계자)
지난 6월부터 달아오른 하이닉스반도체(000660)인수전(戰)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이곳 저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채권단과 SK텔레콤과 STX 등 매수자측은 채권단의 보유지분(구주·舊株) 15% 중 얼마를 팔 것인지, 하이닉스 회사 내부에 자금을 유보시키는 신주(新株) 발행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를 두고 수개월간 다퉈왔다. 최근 채권단과 매수자측은 매매대금 확정시점과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채권단은 SK텔레콤과 STX가 매각과정에서 유난히 요구사항이 많은 편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매수자측은 하이닉스 매각은 단순한 M&A(인수합병)가 아니라 국가 대표 첨단기업을 파는 것이므로 채권단이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4월 22일 주당 3만7400원의 가격까지 올랐던 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8월 22일 주당 1만5500원의 저점을 찍고 16일 종가 기준으로 주당 2만1900원에 장을 마쳤다.
◆ 구주매각 논란 끝에 매수자측 주장 받아들여져
지난 6월 하이닉스 매각 공고 직후부터 채권단의 구주 15% 지분 중 얼마를 팔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채권단이 하이닉스 사내에 자금이 유보돼 시설투자에 쓸 수 있는 신주 발행도 병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구주 매각지분이 늘어나면 신주 인수 물량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SK텔레콤과 STX는 신주 발행을 늘려 하이닉스 회사 내에 자금을 유보시킬 경우 향후 투자재원 확보에 도움을 얻을 수 있어 신주발행 확대를 내심 희망해왔다.
유재한 전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6월 매각 공고 직후 ‘구주 7.5%이상 매각, 신주 10%미만 발행’을 매각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채권단의 공식 의견은 아니었지만 채권단 사이에서 특별한 이견이 나오지 않아 채권단의 잠정적인 가이드라인 정도로 여겨졌다. 정책금융공사는 채권단 전체 매각대상 지분 15% 중 2.59%의 지분을 가진 3대 주주지만, 별도로 갖고 있는 지분 2.89%를 더하면 하이닉스 지분을 5.5%나 갖고 있는 정부측의 대표 하이닉스 채권금융기관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하이닉스 시설투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주 발행이 필요하지만 기존 개인주주 등의 보유주식 가치가 과도하게 희석될 수 있어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비교적 적정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예비입찰에 참여한 SK텔레콤과 STX는 채권단의 구주 인수 비중이 높을 수록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유리한 입찰구조는 문제가 크다며 구주 매각물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하이닉스 매각이 두 번 실패한 것은 조원 단위의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다는 부담 때문이었는데, 구주 매각규모를 늘리면 신주 인수가 제한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유재한 전 사장은 논란이 커지자 책임을 지겠다며 지난달 돌연 사임했다. 이후 채권단은 회의를 거쳐 신주 발행규모와 채권단 구주(보유주식) 매각규모를 14 대 6로 고정시켜 매각을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구주를 7.5%이상 최대한 많이 팔고 신주 발행을 10%미만으로 제한키로 한 데서 채권단이 물러선 것이다.
◆ 매각가격 결정시점·방식 논란
최근 채권단과 매수자측은 주식 매각가격 결정시점과 방식을 놓고도 견해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이번 하이닉스 매각이 이례적으로 신주 발행 규모가 커진 만큼 관련 법제도상 신주 발행가격의 확정가능 시점인 11월 주식매매계약(본계약·SPA) 때 최종 주식 인수가격이 확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증권거래법상 우선협상대상자가 정해져야 하이닉스 이사회가 신주 발행을 구체화해서 발행가격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SK텔레콤과 STX는 본입찰 때 써낼 가격과 실제 주식 매매대금간에 차이가 커선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매수자측은 “10월 예정인 본입찰 시점에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주식 매매가격을 확정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통상적으로 하이닉스와 같은 큰 기업이 새 주인을 맞게 되면 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오르는데 본입찰 후 몇주 후 체결되는 주식매매계약 때 가격으로 최종 매매대금을 정하면 인수기업의 손해가 수백억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채권단은 법 테두리 내에서 얼마든지 매수자측을 고려한 보완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본입찰 시점과 하이닉스 이사회의 신주 발행 결의시점을 가깝게 잡으면 가격 차이를 줄이면서 관련법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니면 신주 발행가격을 본입찰 시점의 시장가격에서 몇 퍼센트 이내로 제한하거나 가격 차이가 크면 입찰자가 입찰을 포기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둬도 된다”고 덧붙였다.
◆ 채권단·매수자측, 장외서 ‘신경전’
채권단은 매수자측에 상당폭 양보를 했는데도 매수자측이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매수자측의 선호대로 신주 발행을 섞어 매각을 진행하다 보니 지켜야할 법제도적 절차가 많다”며 “신주 발행에 대해 매수자측이 사사건건 불만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채권단은 협상장 밖에서 소위 ‘언론 플레이(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 기사화 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것)’를 통해 매수자측이 채권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주식매각대금 확정시점에 대한 논란은 실무자들끼리 초기 의견을 나누는 정도의 사안이었다”며 “확정되지도 않은 실무 논의를 매수자측이 고의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각 쟁점사항은 매각주관사를 통해 충분히 협상하고 논의할 수 있다”며 “언론이나 외곽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일방적으로 흘리는 건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반면 매수자측은 채권단이 매각이익 극대화만 노리는 게 아니냐며 비판하고 나섰다. 매수자측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하이닉스의 지속적인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보유지분을 높은 가격에 파는 데만 집중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매수자측은 또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채권단의 불만에 대해 채권단이야 말로 매각초기부터 간담회를 갖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채권단과 매수자측의 갈등의 골이 좀 더 심해지면 매각성사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0여년간 채권단이 관리해온 하이닉스 공개매각은 지금까지 두 번 실패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이닉스 매각 기회가 다시 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이러한 것들도 고려해 쟁점사항들에 대해 일부 양보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