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55세 신인감독 "제작비 마련하려 두 아들 대출까지 받아… 칠전팔기 장편 데뷔"

그는 '신예(新銳) 감독'이다. 그런데 지천명(知天命·50)을 훌쩍 넘어 이순(耳順·60)을 바라보는 나이다. 박영철(55) 감독. 장편 데뷔작인 '동학, 수운 최제우'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올랐다. 뉴 커런츠상은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으로 신인감독 10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영화 중 두편을 선정해 각각 3만달러(약 33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동학,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최제우의 생애 마지막을 그렸다. 동학의 신념을 지키려는 최제우와 그를 회유하는 상주목사 조영화의 갈등이 주된 내용. 박 감독은 "아버지가 동학(천도교)을 믿었기 때문에 동학과 최제우란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찬일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단연 올해의 주목 작품"이라며 "정중동(靜中動)의 영화 미학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700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사극영화를 찍어냈다는 게 놀랍다"고도 했다.

16일 박 감독을 만났다. "내 영화를 만드는 데 참 오래 걸렸죠?" 박 감독의 첫마디였다. 그는 "지난 11년간 데뷔 영화를 만들려고 7번 시도했다가 다 실패했다"고 했다. 그는 2000년 첫 단편영화 '다카포'를 만든 뒤 장편 영화 데뷔를 꿈꿨지만 제작비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와 세 아들을 둔 그는 텔레마케터, DVD 온라인 판매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박 감독은 "대학을 못 다녔고, 영화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며 "어렸을 때부터 수천편의 국내외 고전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혼자 공부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장철 감독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본 이후로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는 그는 90년대 초반 KBS FM의 '영화음악실' 구성작가로도 일했다. 박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영화 '투맨'(1995)과 '똑바로 살아라'(1997)의 뮤직 수퍼바이저를 담당한 뒤로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게 됐다"고 했다. 2007년부터 한 포털사이트의 '고전영화'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책도 두 권 냈다.

'동학, 수운 최제우'는 박 감독이 집념뿐만 아니라 '빚'으로 빚어낸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제작비 7000만원은 처가와 지인에게 빌리고 첫째(24)·둘째(22) 아들이 대출해온 돈으로 마련했다"고 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아내는 제작부, 첫째 아들은 단역배우, 둘째와 셋째 아들(15)은 연출부로 일했다"고 했다.

원래 염두에 두고 있었던 제작비는 3억5000만원. 박 감독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제작비를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며 "자본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을 버리자, 철학만 영화에 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수운의 일대기 대신 생애 마지막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돈이 많이 드는 조명 대신 자연광만 이용해서 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뉴 커런츠에 선정될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많은 관객이 봐주면 그걸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이 영화는 신념과 신념의 대립을 그렸고, 제 신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11년 동안 계속 실패만 하면서도 지켜온, '영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