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원자력 딜레마'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나는 가장 딱딱한 주제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김명자(67) 전 환경부장관을 만났다. 단전 사태가 빚어진 다음날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기가 끊긴 세상의 혼란을 봤다. 우리 삶은 갈수록 전기에 더 의존한다. 국내 전력 3분의 1을 원전(原電)이 만들어낸다. 그런 전기를 값싸게 쓰면서 정작 원전에는 냉담하다. 저장 수조에 임시보관된 '사용후 핵연료'를 꺼내 중간저장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말을 못 꺼내고 있다."

그녀는 장관(DJ정부 시절 3년8개월)과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난 뒤로 원자력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곱상한 외모와는 별개다. 대학교수 시절 과학사(科學史)를 20년간 강의하면서 원자폭탄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얼마 전 '원자력 딜레마'라는 책을 썼고,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장'도 맡고 있다.

"원전에서 전기를 만든 뒤 타고 남은 핵연료를 어떻게 저장할지가 당면과제다. 수조는 거의 포화상태다. 중간 저장시설을 짓는 데만 20년 이상 걸린다. 지금 시작해도 한참 늦었다. 지난여름 경주에서 공개토론회를 처음 열었다. 개회사만 한 채 파장이 됐다.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단상을 점거했다."

―김 전 장관은 원자력 옹호론자인가?

"원자력에서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반핵(反核)'은 좌파·환경단체의 상징이다. 환경부장관을 지낸 입장이라 조심스럽다. 다만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개발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와 불편한 일상, 더 비싼 전깃값을 감수하겠다면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고리원전 1호기(1978년)를 시작으로 현재 총 21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전력 생산에서 석탄 비중(43%)이 가장 높고, 이어 원자력(34%)이다.

"현재 30개국에서 441기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이중 원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75%)다. 우리나라는 10위다. 원전 발전량으로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한국, 독일 순이다."

그녀의 말은 또랑또랑했다. 통계 인용은 정확했다. 그대로 받아적어도 완벽한 문장이 됐다.

―원전 강국이 프랑스인가?

"드골 대통령(1958~69) 때 국가 위상 회복을 위한 산업 진흥 정책으로 추진했다. 국민적 자부심의 대상이었다. 유럽에서 최대 전기 수출국이다."

―추석 연휴 때 프랑스 마르쿨 원전의 핵폐기물 처리 시설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5명의 사상자가 났다. 여섯달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기억을 떠올렸다.

"방사성 누출은 없었다고 한다. 폭발 원인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의 사망자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사고 한 방이면 모든 것을 잃는다. 원전의 강점이 이런 '고(高)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걸까?

"흔히 과학적으로 원전 사고 확률은 1백만분의 1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원전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확률개념은 설 자리가 없다. 원전의 생명은 '안전'과 '신뢰'다."

―안전 100%가 존재할 수 있나?

"없다. 다만 최고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 이로써 일반 사람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 국내 원자력 전문가 중에는 "우리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세상에 우리만 특별하다는 것이 맞는 소리인가?

"지난여름 국제원자력기구(IAEA) 시찰단이 우리 원전을 점검했다. 당시 시찰단장을 만난 적 있다. 점검 결과 권고사항이 20개쯤 나왔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좋은 평가였다. 하지만 '절대 안전'을 강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원전의 자체 사고 위험뿐만 아니라 어떤 적대세력에 의한 원전 시설 공격은 곧 '핵 테러'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내년에 '핵안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원래는 핵테러 방지와 핵확산 방지 등이 중심 개념이었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 문제도 핵안보 영역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서 핵 테러의 가상적 상황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군에 속하는 어떤 정치인은 '원전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대선에서 이런 공약이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원자력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그런 공약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릴지 모른다. 하지만 책임 있는 리더라면 그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가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에는 아예 원전이 없다고 들었다.

"노르웨이는 인구가 우리의 10분의 1, 오스트리아는 6분의 1이다. 작은 인구에 비해 국토가 넓다. 굳이 원전을 안 해도 된다. 재생에너지 활용에도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산업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다. GDP 1달러를 올리는 데 드는 에너지양이 일본의 3배다. 전기료도 세계에서 가장 싸다. 지난 25년간 우리나라 일반 물가는 3배 가까이 올랐다. 전기료는 10%밖에 안 올랐다. 그나마 이렇게 전기료를 붙들어 맨 것이 원자력이다."

―정치지도자가 원전을 찬성하면 괜찮고, 반대하면 포퓰리즘이 되는가?

"우리의 에너지 환경을 정확히 진단하고 국가 에너지 계획을 바로 세운 뒤에 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맞다. 원전을 할 거냐 말 거냐부터 결정하면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옳다."

―원전 정책 결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너무 모호하다.

"그 지적이 맞다.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을 두고 사회적 합의라고 할지 기준이 모호하다. 원전 사업에서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한 성공모델은 있다. 영국,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등에서 설계한 모델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솔직히 그런 모델이 통할 것으로 보나?

"…사실 자신이 없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원전에서 사용됐던 장갑 작업복 등 쓰레기) 처리장을 선정하는 데만 10년 넘게 난리를 쳤다. 외국에는 이런 사례가 없다."

―주민투표로 결정짓는 것은 어떤가?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민투표 방식이 도입됐다. 그렇게 결론 내는 것이 민주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다. 하지만 허점은 있다. 행정구역상 시설 입지에서 먼 쪽 주민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 결과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 또 작은 표차로 선정된 부지가 입지 조건상으로는 탈락 부지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생긴다. 결국 사회적 협상 능력의 미흡함이 투표를 불러오는 것인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원전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해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과연 원전을 지을 수 있을까?

"나도 그게 의문이다. 지금까지는 원전을 지어 생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원전 수명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거기서 타고 남은 고준위 방사성 물질(사용 후 핵연료)을 관리해야 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우리 사회의 수용성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면 더 이상 원전을 짓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현 정권에선 이런 논의가 진행되지 않나?

"뜨거운 감자를 누가 만지려고 하겠나."

―다음 정권에서는 불가피하게 직면할까?

"더 이상 미뤄둘 순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겠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었던 일본의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 목표를 언제쯤 달성하겠다는 건지, 원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국민들이 그 부담을 얼마나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는지 등과 맞물려 있다. 이런 목표는 어느 정권에서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회의적으로 보는 것 같다.

"당장 전기값이 뛴다. 다른 대체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탈(脫) 원전 정책은 정권이나 여론이 바뀌면서 오락가락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기하는 것으로 확정하지 않았나?

"경제대국이 원전 없이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처음은 아니다. 독일은 1999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가 출범하자 탈(脫) 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기민당·자민당 연정이 승리하자 그 법안을 폐기했다. 원전 가동 시한을 12년 더 연장했다. 이번에 또다시 입장을 바꾼 셈이다."

―미국도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원전 104기를 가동하고 있다. 원전 비중이 20%다. 당장 신규 건설 계획이 지연될 공산은 높다. 탈(脫) 원전 선언은 그전 체르노빌 사고(1986년) 전후에도 불었지만,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이탈리아,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등이 그런 예다."

―탈 원전을 선언하고 지키지 못했다는 것인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는 원전 시설의 수명을 계속 연장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스웨덴은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국민투표 결정을 수정해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비싼 전기료에다 전기를 수입하는 이탈리아도 손을 들었다. 탈 원전의 고통이 너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원전 부활 계획을 최종 승인하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후쿠시마 사태가 터졌다. 이 때문에 부결되고 말았다."

―원전 옹호론자는 '경제성'을 내세운다. 전기를 만드는 데 돈이 가장 적게 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조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외국의 경우 원전을 짓는 데만 평균 23~35년이 걸렸다. 설계·인허가·부지선정·건설기간 등을 포함한 것이다. 개량형 원전의 시설 수명은 가동 후 60년쯤으로 본다. 물론 발전 과정에서는 단가가 낮다. 하지만 수명이 끝나면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일이 또 남는다. 경제성 평가는 어느 단계까지 비용 산출을 하는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원전 건설붐이 식지 않는 이유가 뭔가?

"가장 큰 명분은 기후변화 대응이었다.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매우 크다. 좁은 공간에 연료를 대량 비축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 재생에너지(풍력·조력)와는 발전 시설 면적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후쿠시마 이전까지는 '원전 르네상스'가 예견됐다. 중국은 현재 11기에서 129기, 러시아는 44기에서 31기, 인도는 17기에서 44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