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농구판에 첫 여성 심판위원장 골인

"섣불리 맡을 일이 아니라서 고심했어요. 하지만 '여자라서 하기 어렵다'고 물러서지 말고 농구인으로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결심했습니다."

강현숙(56) 대한농구협회 기술이사가 19일 KBL(한국농구연맹) 이사회에서 심판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남자 프로농구 단체 KBL이 1996년 창설된 이후 여성이 전문위원회(재정·심판·기술·경기·마케팅·선수복지·도핑) 위원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에선 최애영씨(2008년 타계)가 2007년 심판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강현숙은 1970년대 한국 여자 농구 스타플레이어다. 당시로는 드문 장신 가드(172㎝)였다. 무학여고를 졸업하고 1973년 외환은행에 입단해 1980년까지 국가대표를 지냈다. 1979년 서울 세계 선수권대회 때 센터 박찬숙씨와 호흡을 맞춰 준우승을 일구기도 했다. 1980년 홍콩 아시아선수권에선 중국을 31점차로 대파하는 주역으로 나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 위원장은 지난주에 신임 한선교 KBL 총재를 만나 심판위원장직을 제안받았다. 심판 선발, 교육, 경기 배정 등 현 KBL 심판진 27명의 운용을 총괄하는 자리다. '여성 위원장'을 반대하는 구단들 목소리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시작된 KBL 이사회는 심판위원장 선임 문제를 놓고 3시간 넘게 끌었다.

"당연히 반대가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심판을 본 적이 없는 데다가, 판정은 승패에 관련된 예민한 부분이니까요." 그는 "하지만 소신을 갖고 투명하게 심판진을 운영하면 구단들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를 심판위원장으로 강력히 추천한 한선교 총재는 "주위의 우려를 알지만, 시스템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10개 구단 어디서도 '심판위원장이 어느 팀, 누구와 가깝다'는 말이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숙은 1980년 은퇴 후 결혼하고 딸 셋을 키우느라 오랫동안 코트를 떠났다가 2005년 대한농구협회 이사를 맡아 돌아왔다. 작년 체코 여자 세계선수권대회와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팀 선수단장을 지냈다. 남편은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과 국민체육진흥공단 상무이사를 지낸 김종완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이다. 강 위원장은 "지금 축하받기보다는 (3년 임기가) 끝나고 나서 무난하게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