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섭이는 왜 밤 12시만 넘으면 울었을까… 항상 얻어먹기만 해 미안해서 그랬을까…"

"부산 피란 시절에 나,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등 화가들이 진해로 가 술을 마시면 조각가 윤효중이 돈을 내곤 했어요. 그런데 이중섭은 꼭 밤 12시가 넘으면 일어나 울어요. 김환기가 발로 차면서 '야, 밤마다 재수 없게 우냐' 했죠. 나중에 우리끼리 생각해본 건데 항상 얻어먹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울었던 것 같아요. '미안하다' 이야기하면 될 걸 왜 울었을까…."

노화가가 눈시울을 붉히며 옛 친구를 추억했다. 20일 저녁 서귀포시와 조선일보사 공동 주최로 서귀포KAL호텔에서 열린 '2011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는 이중섭(李仲燮·1916~ 1956)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던 백영수(89) 화백의 회고담으로 문을 열었다.

백 화백은 이중섭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부터 했다. "1947년 서울 명동 '돌체'라는 다방에서 처음 만나 안면을 텄죠. 어느 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나왔길래 '다쳤느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하고 이야길 안 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빳빳하게 서는 머리카락을 눕히려고 붕대를 감고 나왔다고 해요. 본시 자기 생각을 남한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지금은 '천재(天才)'로 추앙받지만 당시만 해도 이중섭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부산 피란 시절 어느 빵집 찐빵으로 점심 요기를 하곤 했는데, 이중섭은 돈이 없으니 그림을 몇 장 갖다줬죠. 나중에 비 오는 날 가 보니 그 그림이 빵집 장독 뚜껑으로 쓰이고 있는 거예요. 이제 와 생각하면 참 어이없죠."

서귀포는 이중섭이 부산을 떠난 후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머물며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당시 이중섭과 부인, 두 아들이 살았던 4.6㎡(1.4평)짜리 초가 단칸방이 아직도 남아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술 평론가인 서성록 안동대 교수가 이중섭과 함께 신사실파 활동을 했던 김환기의 작품 세계에 대해 발표했으며, 미술·디자인 평론가 임근준씨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중섭 '황소' 그림은 평화롭게 울음 우는 소가 아니라 성적으로 흥분한 황소를 그린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행사에는 이명도 서귀포 부시장, 이연심 한국예총 서귀포지회장, 마쓰이 사다오 제주 일본국총영사관 총영사, 고영우 이중섭미술관 운영위원, 서예가 김구해, 임영방·최경한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황용엽·민정기 화백,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