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작품 땟국물 빼느라 마사지숍 좀 다녔죠

손영성 감독의 '의뢰인'(29일 개봉)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법정 스릴러다. 시체가 없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철민(장혁)을 둘러싸고 변호사와 검사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인다. 엎치락뒤치락 전개되는 공방 장면은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열쇠이자 박희순(41)과 하정우(33) 두 배우가 펼치는 정면승부다. 하정우는 자유분방하고 유들유들하지만 99％의 승률을 자랑하는 스타 변호사 강성희 역을, 박희순은 이성적이고 신념에 차 있지만 강성희에게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검사 안민호 역을 맡았다. 강성희가 갈대와 같다면 안민호는 대나무 같다.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이들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2002년 첫 영화를 찍었다.

―영화에서 엘리트 역할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박희순 "엘리트가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웃음) 1년 전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너무 전형적인 검사 캐릭터라서 거절했다. 아무도 이 역을 하려고 하지 않아 결국 시나리오가 다시 나한테 왔다. 정우가 출연한다는 얘길 듣고서 '덕 좀 보자'는 생각으로 출연했다."

하정우 "시나리오를 봤을 땐 상업영화의 매력을 잘 드러내고 유머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전작에 몰골로 출연했기 때문에 땟국물을 빼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캐릭터 변화의 폭이 커서 관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박 "동티모르에서 '맨발의 꿈'을 촬영하면서 얼굴에 기미가 많이 생기고 머리가 노랗게 탈색됐다. 엘리트의 모습은 피부과와 마사지숍에서 만든 거다."

―엘리트 연기라 그런지 대사도 많다.

하 "연기는 연극 연습하듯 준비했다. 대사로 많은 정보와 줄거리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전작들보다 대사 전달에 신경 썼다. 서울 서부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도 봤는데 공판 진행은 할리우드 법정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박 "그런데 실제로 검사와 변호사들은 영화에서와 달리 말도 유창하지 않고 서면을 보고 읽다시피하더라. 영화 찍을 땐 방청객과 배심원 등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무대에서 연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대사 분량이 많고 밀도가 높아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했다. 나중에는 말이 막 꼬이고 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다."

―두 사람의 전작(하정우는 '황해', 박희순은 '맨발의 꿈') 모두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 "흥행이란 건 자연현상과도 같다. 아무리 애써도 어쩔 수 없는 거다."

―영화 연기 시작한 지 10년이 다 돼간다. 시작할 때와 다른가.

박·하 (동시에) "외롭다."

하 "일단 경제적 형편은 나아졌다.(웃음) 책임감과 부담감이 계속 커진다. 게다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그걸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거다. 고통이다."

박 "고통이란 말이 맞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쫓기는 건 마찬가지다. 언제나 다음 작품 걱정을 해야 하고. 게다가 책임감까지 생겨서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도 없다."

―고통스러워도 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박 "난 평범하고 재미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기로 그걸 해소한다. 그리고 연극하면서 깨달은 건데 연기를 하면서 슬럼프에 빠지면 극복하는 방법은 무대에서 계속 버티는 것밖에 없다."

하 "연기를 하는 건 운명 같은 거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밥을 먹어서 그 힘으로 살아가는 이치와 같은 거다."

―서로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박 "배우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우는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는데 그게 전혀 티 나지 않는다. 아주 영리한 배우다."

하 "영화의 중심을 잡아줬다. 가벼운 내 역할을 잘 이끌어 주고 균형을 너무 잘 맞춘다. 믿을 수 있는 배우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려고 하나.

박 "남들이 별로 안 해본 새로운 거라면 좋다. 무엇보다 흥행하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하 "그리고 둘이 같이 코미디 영화나 로드 무비에 출연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박 "나는 저질 유머를, 정우는 세련된 유머를 구사하니까 잘 맞을 것 같다. 우리와 각각 영화를 한 번씩 찍었던 이윤기 감독도 꼬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