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北 이은 정명훈·자크 랑 22년 우정

'남북 음악 교류'와 '외규장각 의궤 반환' 등 굵직한 현안들의 막후 조율을 맡았던 '한불(韓佛) 외교 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인 지휘자 정명훈씨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 하원의원이 21일 파리에서 남북 합동 교향악단 연주 추진에 대해 설명하는 회견을 열었다.

정 감독은 "남북 음악인들이 함께 연주하는 날을 평생 기다려왔지만, 그 꿈이 성사된다면 랑 의원 덕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13~14일 평양을 방문해 남북 합동 교향악단 연주 계획을 논의하고 온 정 감독은 오는 12월과 내년 1월쯤 남북 단원이 절반씩 참여하는 합동 오케스트라 공연을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공연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며, 이후 남북 청소년의 정기적 음악 교류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음악 교류를 추진할 때마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 때문에 미뤘지만, 이번에는 랑 의원이 북측 인사를 소개해줘 방북 전에 2~3주간 폭넓게 의논했다"고 말했다.

랑 의원은 남북 문화 교류에서 자기 역할은 '비공식적'이라면서도 "북한의 문호 개방이나 남북 간 다리를 놓는 일에 역할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맡겠다"고 했다. 사회당 소속인 랑 의원은 미테랑 정부 당시 문화부·교육부 장관을 역임했고,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의 특사로 2009년 11월 방북해 프랑스 평양 상주 사무소 설치를 논의하는 등 '마당발'로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의 평양 상주 사무소 설치를 추진하던 중 정 감독이 남북 음악 교류 아이디어를 제안해 '행복한 우연'이 겹쳤다"고 말했다. 프랑스 평양 상주 사무소는 다음 달 문을 열 예정이다.

둘의 협력과 우정은 정 감독이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던 1989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35세 지휘자 정명훈을 추천한 주인공이 랑 문화부 장관이었다. 랑 의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진지하고 사려 깊으며 헌신적인 음악인이기에 주저 없이 추천했다"며 "시련을 겪을 때도 우리의 신뢰는 두터워졌다"고 말했다.

1993년 프랑스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를 처음 한국에 반환할 때도 랑 장관이 미테랑 대통령에게 적극 건의했으며, 지난 4월 의궤 296권이 대여 형식으로 돌아올 때에도 정 감독이 랑 의원의 조언을 받아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도서 반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정 감독은 랑 의원에 대해 "내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말과 행동이 한결같기에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