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 입은 고양이 한 마리… 너도 나처럼 외롭니?

아버지는 풍선장수였다. 늘 취해 있었고, 자주 폭력을 휘둘렀다. 경주 조그만 동네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 났던 소녀는 주말이면 아버지를 도와 풍선에 실 붙이는 작업을 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직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설상가상으로 한복집 하청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마저 팔이 부러져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졸지에 가장이 됐다. 미술학원 강사와 과외를 하며 돈벌이를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에 불 꺼진 옥탑방에 들어오면 키우던 고양이 '나나'만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그녀를 위로했다. 미친 듯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화폭에 '나나'를 담기 시작했다.

'고양이 작가' 이경미(34)가 내달 14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 'You Don't Own Me'를 연다. 회화 15점, 설치작품 3점을 내놓았다. 초현실적인 풍경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안에 고양이를 배치하는 것이 이경미 특유의 화법이다. 작품 '두 신(神)과 우주인 1'(2011)은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내부를 배경으로 체스판 위에 우주복을 입고 서 있는 고양이를 그렸다. "아야 소피아는 처음에 비잔틴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이후 이슬람 모스크가 됐죠. 지난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이 건물 앞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두 신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고양이가 체스판 위에 서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주복을 입은 고양이는 거대한 우주에서 지극히 사소한 존재에 불과한 쓸쓸한 인간 존재 또는 외로운 10대와 20대를 보낸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 이경미는 외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09년 5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 처음 나갔을 때는 작품이 추정가 최고치(3만5000HKD·약 500만원)를 넘어서는 4만3750HKD(약 630만원)에 팔렸다. 같은 해 10월 경매 때도 역시 추정가 최고치(7만HKD·약 1000만원)의 1.7배인 11만8750HKD(약 1700만원)에 팔렸고 3년째 참가한 홍콩아트페어에서도 작품이 매진될 정도다. (02) 511-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