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비가 오더니… 3분기 기업 실적, 역시나 흐림

3분기(7~9월) 국내 주요기업의 수익성이 전기(4~6월)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뚜렷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기둔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2일 본지가 증권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실적을 집계해 본 결과 해당 기업들의 3분기 매출액 추정치는 전 분기보다 1.4% 늘었지만 순이익은 7.4%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순이익은 1분기 이후 점점 감소하고 있다. 올해부터 기업들의 회계기준이 국제회계기준(K-IFRS)으로 바뀌어 지난해 3분기와의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비교했더라도 크게 나아지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휴가·폭우에 경기부진까지…울상

3분기는 제조업 중심인 국내 주요기업들에 전통적인 비수기로 통한다. 휴가기간에는 생산라인도 멈춰서고 매출도 잘 늘지 않는다. 추석 연휴도 3분기였다. 올여름은 특히 비가 많이 와 영업이 쉽지 않았다. 특히 선진국의 재정위기라는 악재까지 겹쳐 수출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고용과 소비가 감소하면서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반도체 가격 하락에다 애플과의 경쟁으로 지친 삼성전자는 전 분기보다 순이익이 6%가량 줄어들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적자가 점쳐진다. 상반기 주도주의 한축이었던 자동차도 마찬가지.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매출과 순익의 동반 감소가 예상됐다. 화학업종도 업황이 좋지 못해 LG화학은 순익이 2% 늘어나는 데 그치고, 금호석유는 두 자릿수대의 영업익·순익 감소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종은 현대중공업 정도만 수익이 늘었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할 듯하다고 증권사들은 예측했다. 공급 초과 상태인 철강업종은 포스코의 실적 부진에서 보듯 여전히 반전 기회를 못잡고 있다.

◆반짝 호실적…여름이 좋아

여름이 반가운 업종도 있다. 항공·여행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한항공의 순익 증가율은 1325%에 달하고 아시아나항공 역시 479%의 순이익 증가가 전망됐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로 호텔신라는 영업익과 순익이 전 분기 대비 각각 2배와 3배로 늘었다.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중 자동차와 화학은 부진했던 반면 정유는 꾸준한 실적 증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시행됐던 정부의 기름값 인하 조치가 7월에 해제되면서 이익증가율은 3분기에 다시 크게 뛰었다. SK이노베이션의 순이익은 전 분기 대비 256%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고 S-Oil 역시 73% 늘어날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봤다. 원유가격이 고점 부근에서 내리지 않아 높은 수준의 정제 마진이 유지된 것도 이익 증대에 기여했다. 4분기가 되면 날씨까지 추워져 정유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내수업종 간에는 명암이 엇갈렸다. 신세계에서 분사한 이마트는 매출과 이익 모두 늘었지만 정작 모기업 신세계는 주춤했다. 2분기 아모레퍼시픽보다 순익이 더 적었던 LG생활건강은 3분기에 다시 역전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 둔화…4분기 우려

전문가들은 이번 3분기 실적에는 일시적 요인이 적지 않았던 만큼 부진한 기업이라 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평가했다. 원자재 가격이 천장을 찍고 점차 안정될 것이란 전망도 향후 부담을 줄여주는 요인.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오고 있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우리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은 고물가로 인해 긴축정책을 지속하고 있어 국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다.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 급등했던 원자재 가격이 하반기 안정돼 인플레이션 요소는 낮아질 것"이라며 "그러나 판단이 쉽지 않은 해외 변수들이 많아 실적에 대한 눈높이는 갈수록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