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외무부도 "통영의 딸 구하기 운동, 정말 좋은 일"

23일 오후 1시 30분(현지 시각)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 앞에 독일인 10여명이 모여 "북한 당국은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를 석방하라"며 시위를 했다. 이들이 준비한 신씨 모녀 사진에는 '지옥 같은 곳에서 신숙자 모녀를 구해주세요'라는 한글 문장이 써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이는 벽안(碧眼)의 게르다 에얼리히(71) 할머니다.

시위 직전 만난 에얼리히 할머니는 "2009년 8월 베를린의 한 교회에서 강연을 들은 후 북한 정권의 끔찍함을 알게 됐다. 성서에 '벙어리를 위해 네가 대신 입이 되어 줘라'라는 구절이 있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북한 대사관 앞 '금요 시위'였다.

지난 2년간 금요 시위를 하면서 에얼리히씨는 '독일의 북한 할머니'가 됐다. 탈북자 이순옥씨의 수기 '꼬리없는 짐승' 독일어판을 여러 번 읽었고 인권단체 앰네스티 등을 통해 구한 북한 관련 자료도 읽었다. 독일 내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도 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무고한 주민들을 고문하는 것은 히틀러가 가스실에서 사람을 죽인 것만큼 나쁜 일"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또 "내가 구 동독 마그데부르크 출신이다. 동독 공산주의 시절 난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어서 여행 금지 등 당국의 압력을 받았다. 그런 작은 인권 침해도 괴롭다. 고문을 자행하는 수용소 등 북한 인권 침해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북한 대사관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금요 시위를 하던 초창기, 대사관 관계자가 문밖으로 나와 독일어로 "당신, 좀 심한 것 아냐. 독일 내에는 (인권을 유린하는) 수용소나 감옥이 없는가"고 말했다. 할머니는 "독일에도 감옥은 있지만 당신들처럼 심하지 않다. (시위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대사관 관계자는 "당신의 행동은 목적도 없고 무의미한 일이다"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고 했다.

한 독일인이 소란을 떨며 시위를 방해하기도 하고 불가리아 남성들이 "당신에게 누가 돈을 주고 이런 것을 시키느냐. 남한에도 문제가 많다. 그런 것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할머니는 "독일인이나 불가리아인 모두 북한 측이 사주해 보낸 사람들 아니겠느냐"고 했다.

처음에 외롭게 시작한 금요 시위에 힘이 돼준 것은 독일 젊은이와 정부였다. 대사관 인근 유스호스텔에 묶고 있던 젊은이들은 할머니 대신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독일 외무부 관계자는 "좋은 일"이라며 할머니를 격려했다.

베를린에 관광 온 중국인 여행객들은 "우리는 먹을 것은 많지만 인권은 없다"며 할머니의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의외로 한인 교회가 무관심했다. 함께 시위를 하자고 찾아갔는데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인터뷰 후 행인들에게 엽서를 나눠줬다. 북한 당국에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