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저성장 시대로] 이젠 年7% 수익률도 대박… 눈높이부터 낮추자

다시 위기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자 국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유사한 위기에 많은 이가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 핌코의 엘 에리안 최고경영자는 "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저(低)성장이 지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로 접어든다"고 했는데 한국 경제에도 비슷한 '감속(減速)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글로벌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와 함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의 시대에 개인과 기업의 생존 전략을 시리즈로 제시한다.

중견 건설사 상무로 일하다 석 달 전 해고당한 김영수(49·가명)씨는 요즘 낯선 세계에 던져진 기분이다. 매일 새벽 6시면 일어나 2시간 넘게 신문을 꼼꼼히 뒤적인다는 그는 "세계경제, 국제 금융 기사를 읽다가 이렇게 모르고 살았나 후회한 적이 많다"고 했다. 재취업 기회와 사업 아이템을 찾아 지인들을 만나보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기 전만 해도 김씨는 샐러리맨의 성공 모델이었다. 1991년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11년 만인 2002년 불과 40세에 임원 자리에 올랐고, 연봉도 1억원을 넘겼다. 2006년 부동산 호황기에는 한 달 접대비만 3000만원을 쓰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내년에는 사업을 얼마 늘리자'는 회사의 목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재테크에서도 승승장구했다. 2002년 마련한 경기도 분당 미금동 자택에다, 2005~ 2007년 회사가 분양한 용인 동백과 신봉동 아파트도 2억~3억원씩 대출을 받아 사들였다. 집만 3채. 2007년 집값이 고점을 찍었을 때 그의 자산은 14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 김씨는 아파트를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다시 취업하는 일이 급하다. 김씨는 "열심히 일하면 승진과 재산 증식은 당연하고 가족 관계도 원만하게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 10년 후쯤 은퇴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걸 10년 앞당겨 겪는다는 심정으로 요즘 산다"고 말했다.

◆'감속' 징후가 뚜렷해지다

가속 페달을 밟는 데만 익숙하던 대한민국 기성세대가 경제 전반의 '급감속'에 당황하고 있다. 김씨처럼 잘나가던 자산 증식과 경력 관리에 한꺼번에 제동이 걸린 사람이 즐비하다. 이런 감속 현상은 앞으론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77~1989년만 해도 연평균 14.7%씩 늘어났다.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8.9%였으니 가계 살림이 나라 경제보다 더 빠르게 커졌다. 인구 증가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 덕분이다. 2001~ 2007년에 다소 무뎌지긴 했어도 이런 추세는 어느 정도는 이어졌다. 이 기간에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7%, 1인당 GDP 증가율은 그 두 배에 이르는 9.8%를 기록한 덕분이다.

그러나 글로벌 위기가 덮친 2008년 이후 4년간(2008~2011년, 2011년은 추정치) 1인당 GDP 증가율은 평균 1.7%로 내려앉았다. 지난 4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4%)의 절반도 안 된다.

6단 기어를 놓고 달리던 개인들이 갑작스럽게 2단으로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향후 전 세계의 잠재 성장률이 1%포인트가량 내려갈 것"이라며 "한국도 중장기적인 저성장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 속도가 느려지자 주식과 부동산 수익률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 말까지 3년간 주식과 부동산의 총 투자수익률은 각각 32.1%, 7.6%였다. 같은 기간 안전 자산으로 평가되는 금은 137.5% 올랐고, 정기예금 수익률도 18.2%에 달했다. 집을 사는 것보다 은행에 가만 돈을 넣어두는 것이 2배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집값은 2001~2007년 연평균 6% 올랐다가 2008년 이후 연평균 상승률이 2.7%로 내려앉았다.

◆감속 원인은 거세진 '삼각 파도'

경제 전반에 감속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기가 침체될 조짐이 뚜렷한 데다, 우리나라가 노령화와 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도 버거운데, 높은 파도 세 개가 동시에 들이닥친 셈이다.

우선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 21일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경제권의 내년 성장률이 1% 대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유럽에 전체 수출 물량의 20% 이상을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도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구 노령화가 가속화되면 경제활동인구는 줄고 그만큼 경제성장 속도도 더뎌진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조업은 중국과 인도에 상당 부분 잠식당했고, 주택과 철도·도로 등 국내 건설산업은 포화 상태다. 하루빨리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10년간 경제성장률 0%대를 기록한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

◆급브레이크 대신 엔진 브레이크부터 걸어라

'삼각 파도'를 맞게 된 기성세대는 고속 성장에 익숙하던 생활을 어떻게 재조정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풋 브레이크를 밟기보다, 감속을 기정사실화하고 우선 엔진 브레이크부터 걸어야 예상 밖의 제동에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정지택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경제 전반의 감속 현상은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40~50대에 특히 충격이 클 것"이라며 "개인도 이제 저성장에 대비해 경력과 투자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BAIN & COMPANY·조선일보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