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모임보다 '아버지회'가 더 좋아

"아버지끼리 모여서 '우린 그저 돈 버는 기계 같다'는 말들을 해요. 직장 동료한테도, 고향 친구한테도 못 하는 얘기죠."

서울 명원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최한솔(41)씨는 지난 4월 아버지회 설립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했다. 최씨가 속한 아버지회에는 '족구 모임' '산행 모임' '밴드 모임'과 순수 친목 모임인 '일번지 모임' 등 소모임이 4개 있다.

아버지회는 아버지들이 자녀를 위해 학교 일을 도와주는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이런 소모임은 순수하게 아버지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만들어졌다. 각 소모임은 보통 2주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수시로 열리는 '번개(미리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모임)'에도 아버지가 많이 모인다. 나이도 비슷하고 자녀 교육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는 아버지들은 아버지회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이 아버지회에는 현재 40여명이 활동하고 있고 소문을 타며 회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서울 시내 초·중·고교 아버지 모임은 약 90개로 최근 들어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버지회는 원래 자녀 교육에 유별나게 관심을 가진 아버지들이 모여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에 비견할 만한 '바지 바람'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최근 아버지회는 아버지들이 가족의 사랑을 얻는 수단으로, 또 아버지들의 친목 모임으로서 평범한 아버지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이웃 남성들의 모임' 성격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황과 노후 불안 등 40, 50대 가장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중년의 위기가 아버지들을 아버지회로 모이게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직장 내 경쟁이 심해지면서 남성들의 전통적 모임인 직장 동료 간 모임이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녀 교육이라는 공통 관심사, 생활수준이 비슷한 이웃 주민이라는 친숙함 등이 있어서 동창, 직장 동료보다 더 동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