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反骨 대응법

〈제9보〉(120~129)=수비형 기사들은 계산능력과 함께 타개(打開)가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타개는 생각만큼 쉬운 과목이 아니다. 국내 수비형 기사 중 초1류로 꼽히는 박영훈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끝내기 공부를 즐겨 그쪽에 약간 자신이 있지만 타개는 서툴다"며 "바둑이 난전으로 치달으면 많이 떨린다"라고 고백했다. 공격보다 수비가 힘들다는 건 만고의 진리인 모양이다.

지금 백은 집에서 앞선 대신 우변에서 중앙으로 뻗어나온 대마가 미생(未生)인 채 쫓기고 있다. 곤마(困馬)의 타개 여부가 승패의 열쇠로 좁혀진 상황에서 120이 문제의 일착으로 지목됐다. 지나가는 길에 가볍게 선수(先手)하려던 뜻으로, 참고도가 백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당대 최고의 반골(反骨)형 승부사다. 121이 최강의 승부수.

120으로 122였으면 쉽게 탈출할 장면에서 백은 위기를 자초했다. 121이 놓인 상황에서의 122는 우측 흑 5점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아 흑의 포위망은 보기보다 강하다. 126으로 127을 절단하면? 흑이 '가'~ '다'를 모두 선수한 뒤 '라'로 살아버려 백만 망한다. 127 때 백은 배짱 좋게 128로 뚫었고 흑은 129로 막았다. 이 싸움의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