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치킨게임

〈제11보〉(139~150)=두 대의 차량이 서로 마주 본 채 전속력으로 달린다. 충돌 직전 핸들을 꺾은 '겁쟁이'가 패자(敗者)다. 이른바 '치킨게임'식 일직선 질주 장면은 바둑에서도 꽤 자주 등장한다. 다만 반상(盤上)에선 결코 공멸(共滅)로 끝나는 경우란 없다. 대개 우세한 쪽에서 핸들을 꺾거나, 정면 충돌을 하더라도 한쪽만 패망한다는 점에서 치킨게임과 차별화된다. 바둑과 치킨게임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았다.

백△가 놓이자 흑이 139에 붙여간 장면. 백△는 위기의 백을 구원한 승착이었다. 참고도를 보자. 흑은 1로 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2 이하 10까지의 절묘한 공배 메움 작전이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잡으려면 11의 파호(破戶)가 필수지만 14에 이르면 흑이 먼저 잡힌다.

139는 말하자면 눈물을 머금고 핸들을 꺾은 수. 대마 사냥 대신 집으로 대적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중원의 좁은 계곡에서 또 한 차례 치열한 치킨게임을 펼친 결과 149까지 일단락됐다. 백은 '가'로 이어가지 않고 150으로 좌중앙 흑 4점에 자물쇠를 채운다. 흑도 '가' 절단에 앞서 먼저 중앙 6점부터 달아나야 할 부담을 안았다. 치킨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