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재일교포, 20년째 고향(마산)에 책 기증

"한국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 주기를 바라고, 저도 조국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경남 마산시(현재 창원시로 통합)가 고향인 재일 교포 김순조(76)씨. 일본 오사카에서 살고 있다. 그는 해마다 추석 무렵 고향을 찾는다. 부모님 묘소 벌초를 위해서, 그리고 고향의 마산도서관에 책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는 1991년부터 올해까지 일이 바빴던 두 해를 빼고 20년째 찾아와 전문 서적을 모두 840여권 기증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고 산호동 마산도서관 2층 종합 자료실에는 '김순조 기증 문고'라는 코너가 따로 있다.

1954년 19세이던 김씨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은 공부를 허락하지 않았다. 겨우 초등학교를 나와 갔던 중학교도 몇 년을 쉬어야 했고, 고등학교도 다니기가 벅찼다.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유다. 마산항에서 밀항해 일본으로 간 그는 아는 사람도 없고 일본말도 할 줄 몰랐다. 후쿠오카와 오사카를 전전하면서 폐광 주변을 농지로 만드는 노동 등 온갖 막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긴키(近畿)대학에 들어가 기계공학을 겨우 공부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은 쉽지 않았고, '일신정련공업'이라는 작은 금속·공작기계 공장을 차렸다. 그는 "공장이 크지는 않지만 먹고살 만큼 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겨 내 나라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검고 짙었던 눈썹은 힘들었던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해 어느새 새하얗게 변한 뒤였다.

한국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친구들을 돕기도 했고, 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옛날 자신이 어렵게 공부했던 생각이 떠올라 고국 학생들을 위해 '책'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벌초와 기증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오기 두세 달 전에 도서관을 찾아와 미리 구입해야 할 책을 엄선하느라 일주일가량을 머물기까지 한다. 금속·기계 전문 서적이어서 같은 책을 제목만 바꿔서 낼 경우 같은 책인지 모르고 사는 것을 막고, 구입하는 책 수준이 낮은 것 등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대학이나 기업 도서관도 아니면서 지역에서는 전문 서적을 고르게 잘 갖춘 도서관으로 소문이 날 정도다.

김씨는 "한국이 잘돼야 외국에 사는 우리 같은 교민들이 힘도 쓰고 자랑스럽지 않겠냐"면서 "큰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마음을 받아주시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