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갑속 만원, 누군가에겐 희망"…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기부

대학 시절부터 서울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던 편기범(65)씨는 정치가 꿈이었다. 고향 선배가 "정치하고 싶으면 기부를 하라"고 했다. 편씨는 33세(1979년)부터 6년간 고향에 살며 모교인 충남 광동초등학교에 장학금을 냈다. 쌀 한 가마니 값이 3만1000원 하던 시절 해마다 형편이 어려운 졸업생 5명을 뽑아 10만원씩 지급했다.

마흔을 목전에 둔 1984년 꿈을 바꾸게 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소아마비 장애인이던 큰형이 사업 실패에 충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군 복무 시절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이어 두 번째였다.

출마를 포기한 편씨는 상경 후 '선생님 덕분에 교복을 살 수 있게 됐다'는 장학생의 편지를 받고 인생관을 바꿨다. 편씨는 고향 친구들 앞에서 "입신양명하는 대신 한 개인으로 훌륭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1985~99년까지 매년 광동초등학교에 100만원씩 기부했고, 2000년 '너른내장학회'를 만들어 지원 규모를 1000만원 이상으로 늘렸다.

서울 중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영건(52)씨는 2008년 6월 자신의 애마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그는 '무사히 돌아오면 심장병 어린이 한 명을 후원하겠다'는 각서를 써서 품에 넣고 출발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각서를 꺼내보며 "내가 돌아가면 한 아이가 산다"고 다짐했다. 그는 죽을 고비 넘겨가며 두 달간 1만5689㎞를 달린 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서울대 어린이병원후원회에 1000만원을 입금했다. 이후 이씨는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할 때마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를 냈다. 총 5명을 살렸다. 이씨는 "나로 인해 한 생명이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참으로 묘해 멈출 수가 없다"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는 일에)중독된 것 같다"고 했다.

1억원 이상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들의 모임) 회원들 외에도 감동을 주는 소액 기부자들이 많다. 우리나라 개인 기부금은 1999년 8500억원에서 2008년 5조5000억원으로 6배 이상 크게 늘었다(국세청 통계). 기부자중 90% 이상이 연 100만원 이하의 소액 기부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장)는 "짧은 시간에 한국의 개인 기부(62%)가 법인 기부(38%)를 넘어선 것은 이런 소액 기부자들 덕분"이라고 했다.

표영태(54)씨는 소액 기부자로 출발해 조금씩 기부 규모를 늘리고 있다. 표씨 아버지는 표씨가 태어나기 전 일본에 돈 벌러 갔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표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척 집을 전전했다. 고등학교 마치고 구로공단에서 작업복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부인도 애를 보며 사업을 거들 만큼 허덕였지만 지금은 직원 4명·연매출 15억원의 안정된 자영업체가 됐다.

표씨는 2005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2명을 서울 신도림 주민센터에서 추천받아 1인당 250만원씩 한해 500만원을 후원했다. 그해부터 신도림주민센터를 통해 월 20만~30만원씩 독거노인에게 밑반찬 만들어주는 사업에 후원금을 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구로구 장애인자활센터에 직업교육용 재봉틀 1500만원어치를 기부했다. 표씨는 "나 자신은 극빈에서 중산층으로 올라섰지만 지금도 어려운 사람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돈 쓰는 재미 중에 기부하는 뿌듯함이 가장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