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 뚫고 날아간 화살, 英관객 꿰뚫었다

우리의 활이 세계로 날아갔다. 720만여명(1일 기준)이 본 액션사극 영화 '최종병기 활'(이하 '활')이 지난달 30일 LA를 시작으로 북미지역 15개 관에서 개봉했다. 이미 영화 판권이 팔린 영국·독일·체코·폴란드·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서도 조만간 현지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그간 이창동·홍상수·박찬욱 감독 등 이른바 '영화제 감독'들의 영화가 해외 개봉한 경우는 많았지만, '활' 같은 국내 대중 상업영화가 북미·유럽으로 진출한 경우는 흔치 않다. '활'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250여 개봉관을 유지하고 있어 조만간 '써니'(737만2055명)를 제치고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과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0위에 오를 가능성도 크다. 최근 런던 시사회를 마치고 돌아온 김한민(42) 감독을 지난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런던 시사회 반응은 어땠나.

"영국 사람들도 우리 관객과 같은 장면에서 웃고 긴장하더라. 한국 전통 복장과 활도 신선해했지만, 무엇보다 옛날을 배경으로 아주 현대적 액션 영화를 만든 게 재밌다는 평이었다."

―우선 '활'이라는 소재 자체가 특이하다.

"자전거 타는 게 취미인데 어느 날 우연히 국궁장 옆을 지나가는데 느낌이 팍 오더라. 어린 시절 고향 순천에 있었던 국궁장도 떠올렸다. 과녁을 겨냥하는 순간의 정적(靜的)인 느낌과 날아갈 때의 스피드, 타격감을 살리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조선 명궁 남이(박해일)는 휘어서 날아가는 곡사(曲射)를 쏘고, 청나라 장수 쥬신타(류승룡)는 무거운 육량시(六兩矢)를 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시위를 당긴 뒤 활을 360도 꼬아서 쏴도 부러지지 않는 건 우리 전통 활이 유일하다.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서울에 있는 국궁장 황학정과 대한궁술원에서 고증을 받았다. 육량시는 대륙의 기상을 상징한다. 인물과 스토리뿐만 아니라 액션의 장면과 소리까지 콘트라스트(대비)와 긴장감을 주려 했다."

―흥행 성공을 예상했나.

"적어도 실패하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국 영화는 감독의 주제의식을 중시하는 영화가 한 축을, 영화의 재미를 위한 코미디·멜로·액션 장르 영화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이 밸런스를 고루 갖추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액션, 추격 등 장르 느낌이 강하다.

"대중 상업영화를 만드는 한 장르를 벗어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장르를 빌려서 뭘 말하느냐다. 할리우드의 '인셉션'이나 '매트릭스'를 보면 대단히 재미있는 액션이면서 동시에 감독의 세계관이 함께 구현돼 있다. 나도 우리 민족의 불굴의 정신을 담으려 했다."

―영화의 속도감이 인상적이다.

"촬영·편집 내내 리듬이 끊이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단순한 스토리와 스피디한 전개, 관객들이 숨은 쉬더라도 숨 쉴 틈 없는…."

―'활' 정도 규모라면 촬영에만 반년은 걸려야 한다고 하던데 '활'은 넉 달이 채 안 된다던데.

"무조건 8월 초에 개봉하기로 못박고 2월에 촬영을 시작해 6월 초에 모두 끝냈다. 추격 영화니까 남이와 쥬신타가 같은 공간에 있게 된다. A팀이 남이를 찍는 동안 B팀은 준비하고 있다가 A팀 촬영이 오케이면 B팀이 곧바로 쥬신타를 촬영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아꼈다. 감독에게도 경제적 관념이 중요하다고 본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대기업 공채 출신이라는 이력도 독특하다.

"고1 때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을 본 뒤 영화감독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 가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일하던 중 '야구선수를 해야 할 사람이 심판 보고 있네'라는 느낌이 들어 그만두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다음 작품은.

"사도세자를 다룬 스릴러 영화를 기획 중이다. 정말 임금이 당쟁(黨爭) 때문에 화가 나서 아들을 가둬 죽였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마침 이를 다룬 소설을 읽게 됐다. 그다음에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