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떡갈나무 같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詩

욱스발(하비에 바르템)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뒷골목에서 아프리카와 중국 불법이민자들의 일자리를 알선하며 생계를 꾸린다. 조울증에 걸린 전처(前妻) 마람브라(마리셀 알바레스)는 그의 주위를 맴돌며 시비를 건다. 욱스발은 망자(亡者)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자신이 암에 걸려 곧 세상을 떠날 처지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다.

'비우티풀(Biutiful)'의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를 "늙은 떡갈나무와 같은 나의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아버지가 아이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는 신파극을 한 편의 시(詩)로 바꿔놨다. 죽음과 인생, 용서와 죄의식 같은 무거운 이야기를 영화 곳곳에 심어두고서 살아 숨 쉬는 듯한 거친 영상과 음악 등으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멕시코 출신의 감독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와 폐쇄적인 공간들을 이용해 관광도시 바르셀로나를 비극을 품고 사는 도시로 그려냈다. '브로크백마운틴'의 음악 감독인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만들어낸 음악은 영화를 관통하면서 등장인물과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전작 '바벨'과 '21그램'에서 보여준, 시간의 순서와 공간을 파괴한 영화 작법을 이번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욱스발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과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아냈다. 그리고 욱스발의 고통과 슬픔을 그의 언어로 직접 드러내지 않는 대신, 욱스발과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무게를 묘사한다. 욱스발은 남겨질 어린 남매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지만, 이를 위해 뒷골목에서 그가 하는 일은 결코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온전치 못하다. 중국인 게이 커플도, 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내도 결코 선악(善惡)의 범주 안에서 재단하기 힘들다. '이렇게 쓸쓸하고 아이러니로 가득한 인생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건 결국 관객의 몫이다.

비우티풀은 하비에 바르뎀을 위한 영화이자, 그에 의해 '완성'된 영화라고 할 만하다. 이 배우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뒷모습만으로도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보여줄 수 있는 걸까. 웃고 있을 때조차 처연한 눈빛, 주변의 공기까지 울리게 하는 목소리는 타고난 걸까. 그는 스페인 출신 세계적 스타 페넬로페 크루즈와 결혼했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한 차례,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받았다. 지난해엔 비우티풀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딸 안나가 “‘비우티풀(beautiful)’의 영어 철자가 뭐냐”고 묻자 욱스발이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돼. b-i-u-t-i-f-u-l”이라고 알려준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를 암시하는 대목.

#대사

“아빠를 기억한다고 약속해. 날 잊지 마, 내 사랑.”(욱스발이 그의 병을 알아챈 딸을 안고 울면서)

#해외평

“처음엔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이 다가오다 곧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 찾아온다”(롤링스톤)

#이런 분들 꼭 보세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였냐’며 한탄하는 분들. 인생의 아이러니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잘하면 실낱같은 희망도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