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명 일상의 퍼즐 맞췄더니… 한 편의 영화 되더라

영국 출신 케빈 맥도날드 감독이 연출하고 '글레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한 '라이프 인 어 데이'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모은 다큐멘터리다. 일상의 파편을 모아 붙여 만든 이 영화는 누군가의 그저 그런, 또 다른 일상이 아닌 인생 자체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 제작진은 지난해 7월 6일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줄 것을 요청했다. 조건은 그 해 7월 24일에 찍은 동영상이어야 한다는 것. 197개국에서 총 4500시간 분량의 동영상클립 8만여개가 유튜브에 올라왔다. 이 중 선별된 331명의 영상이 9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사상 가장 많은 제작인원이 동원된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런던에 있는 맥도날드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원데이 인 셉템버'로 2000년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2009년에는 러셀 크로와 벤 어플렉이 출연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를 연출했다.

맥도날드 감독은 "누구나 비디오 카메라와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를 가질 수 있고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다. 모두가 영화감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한 영화를 만들 기회도 열린 것이다. 그래서 파리의 눈과 같은 '모자이크 아이'로 세상과 인생을 한번 보자는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7월24일' 하루 안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다 담아냈다. 장소는 세계 각국으로 모두 다르지만 분만실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서부터 아버지에게서 수염 깎는 법을 배우는 사춘기 소년과 노부부의 금혼식, 사고로 인한 죽음까지 다 영화 안에 있다. 감독은 "193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매스옵저베이션' 운동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수백명의 영국인들에게 한 달에 한번 상세한 일상을 기록한 일기를 쓰도록 했고, 이 일기들을 편집해서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며 "펜과 종이로 했던 것을 지금은 비디오 카메라로 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45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은 한 사람이 6개월간 잠 한숨 자지 않고 봐도 다 못 볼 분량이다. 맥도날드 감독은 "영화학교 졸업생 중 다양한 언어권 출신 24명을 채용해 동영상을 본 뒤 별점을 매기도록 했다. 나는 별 5개 만점에 4~5개를 받은 동영상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두 달 동안 편집했다"고 했다. 그는 "조수들에게 인공적이고 피상적인 내용이 담겼거나 자기도취에 빠진 동영상들을 제외시키도록 했다"며 "별 4~5개를 받은 동영상들 가운데는 상상력 가득한 화면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편집과정서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영상이다, 호주에서 온 영상이다'라는 생각에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나중에는 지겨워졌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선 한국인 윤옥환씨가 찍어 보낸 영상이 가장 자주, 길게 나와 눈길을 끈다. 윤씨는 8년 전부터 지금까지 190개국을 자전거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영화에서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를 한다"고 했다. 맥도날드 감독은 "윤씨는 이 영화의 마스코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영화에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딱히 연출한 것도 없는데 당신을 감독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맥도날드 감독은 "사실상 협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동영상들을 취사선택해 영화로 구성했으니 감독은 맞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을 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영화의 구성을 갖춘 데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라이프 인 어 데이는 내 삶을 바꿔놓은 경험이었다"고도 했다. "이 영화는 삶을 긍정하고 있어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동영상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 정신상태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지는 않았나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원래 인간과 인생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이젠 다르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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