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66] "녀자가 담배를 만이 피우면 개얼골이 됩니다"

수백 년간 곰방대만 피우던 이 땅에서 1905년경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궐련(cigarette)은 흡연 역사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나 근대의 담배는 수많은 농민을 울린 물건이기도 했다. 조선총독부가 1921년 4월 '연초전매령'을 제정하여, 허가 없이 담배를 경작하거나 판매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담배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농민들을 절망에 빠뜨렸기 때문이다.(1921년 4월 5일자) 전남 함평군의 3개 면민 수백명은 담배 경작을 금지당하자 "우리의 밥슐을 끈느니보다 차랄히 우리를 모다 죽여주오" 하며 강력 반발했다. 800여명이 운집했으나 경찰대까지 출동한 끝에 결국 농민들은 담배모를 뽑히고 말았다.(1923년 6월 23일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피우는 '시가렛토'는 위스키, 중절모, 양복과 나란히 근대 신문물의 대표 격이었다. 흡연 인구는 계속 늘었다. 1928년 궐련 제조량은 44억2065만 개피나 됐다.(1928년 4월 3일자)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중반에는 '담배도 굉장히 피우네'(1931년 3월 3일자) '연기가 삼켜먹은 황금 이백만원'(1937년 1월 18일자) 등 담배 소비의 급증을 비판하는 보도나 '새해에 술과 담배를 끈코 절제생활을 힘쓰자'(1928년 12월 27일자)는 금연 권유 기사가 잦았다.

초창기 금연 운동은 건강이 아니라 돈 낭비를 줄이자는 게 주된 이유였다. 궐련이 보급된 지 20년이 넘는 동안 담배의 해악(害惡)에 관한 보도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담배가 건강에 좋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가끔 보도됐다. "담배독이 살균력이 강해서 충치를 방지"(1936년 8월 30일자)한다는 치과 의사들 견해를 전했고, 미국 어느 대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담배를 몹시 피우는 사람은 니코친에 참는 힘이 생겨서 위장에 별로 고장을 이르키지 안습니다"(1939년 4월 18일자)라고 전하기도 했다. "무서운 담배의 해독/위암 설암에 걸리기 쉽다"(1937년 1월 13일자)처럼 흡연의 치명적 해독을 알리는 기사는 193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다.

그 대신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몸에 좋지 않다'는 의학적 의견들은 일찍부터 보도돼 눈길을 끈다. "녀자가 담배를 만이 피우면 개얼골이 됩니다"(1932년 5월 31일자) "담배, 세계 부인들이 다 피울지라도 조선부인만은 피우지 맙시다"(1935년 2월 7일자)라며 여성 흡연을 더 문제 삼은 견해들을 전했다. 담배를 '꼬나문' 모던 걸에 대한 어른들의 부정적 시선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1929년 9월 17일자 '담배 먹는 여자는 쉽게 늙습니다'라는 기사는 의학 정보를 알리는 내용인데도 "(여자들이) 근자에 와서는… 붓그럼 업시 권연초를 퍽퍽 사나희하고 경쟁이나 하는 듯 피여 대입니다"라며 "어린 여자가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는 것은 타락한 녀자 가티 보인다"고 밝혀 당대의 거부감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