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내 인생] 포스코 '名匠'서 진로지도 강사로 변신한 정대교(62)씨

'혹시 졸고 있는 녀석들은 없나. 내 이야기가 지루한가, 퀴즈를 낼까….'

강의를 할 때면 항상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살핀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잠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저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 오늘 내 강의가 이 아이들이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늘 이런 마음이다.

지난주는 경기도 양평 강하중학교와 용인 서농중학교를 다녀왔다. 여기에다 가끔 찾는 강원도 원주교도소까지 세 군데를 뛰었으니 좀 바빴던 한 주였다. 올 연말까지는 계속 이럴 것 같다. 일정표가 이미 빡빡하다.

나는 2005년 3월 30년간 근무한 포스코에서 '스테인리스생산부' 총괄직 주임(과장급)으로 정년퇴직했다. 원래는 퇴직과 동시에 중국 절강성 장가항시(市)에 포스코가 투자한 '장가항포항 스테인리스 제강공장'에 기술고문으로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출국을 앞두고 건강검진 결과 "절대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와 중국행을 접었다. 오랫동안 일에만 몰두하느라 피로가 누적됐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잘못이었다.

중국에 가서 '제철인'으로서의 인생을 좀 더 살지 못한 것은 별로 아쉽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고, 2007년 말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위촉을 받아 직업 진로지도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인생 후반기에 찾은 새 일자리는 내가 지난 1998년 정부로부터 제강분야 '대한민국 명장(名匠)' 칭호를 얻은 것이 인연이 됐다.

그 후 나는 전국을 다니며 초·중·고등학교와 전문대, 교도소, 기업체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요즘은 중학교에 자주 출강해 어떻게 인생을 설계하고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들려준다. 내 직장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계발 요령, 아이디어 도출 방법, 미래지향적 직업 선택의 기준 등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공업계 고등학교에서는 기능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것과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하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한다.

나도 강원도 영월공고를 졸업하고, 대한석탄공사에서 6년을 근무한 뒤 1976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에 입사했다. 젊은 시절 나는 패기가 넘쳤다. 그때만 해도 잘나가던 석탄공사를 떠나 낯선 제철 분야에 도전하면서, '내가 맡은 일에서 일인자가 되어보리라' 다짐했다. 입사 후에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부서로 보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배치된 곳은 제강쇳물을 이용해 중간소재를 만드는 '연속주조공정'이었다.

우리나라 제철공업의 태동기였던 당시만 해도 제철소에선 공정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나는 이것을 빠트리지 않고 메모해뒀다가 개선 아이디어를 만들어 제출했다. 현장에서 작업하거나 순찰을 돌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착상도 계속 메모해 나갔다. 그 습관은 평생 이어져 포스코 재직 기간 동안 신기술 특허와 실용신안만 26건을 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제안·발명까지 합치면 100건 이상의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들보다 적지않은 월급을 받고 회사에 다닌 비결이다. 이 모든 흔적이 남아 있는 메모 노트 수십 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명장' 칭호는 이런 노력 끝에 자연스럽게 주어졌을 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메모하고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익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점만 다를 뿐이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처럼 생각하며 다른 꿈을 키우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딱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고조차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더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내 강의가 작은 변화의 계기라도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비록 정들었던 생산현장은 떠났지만, 인생의 후배들에게 내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내가 개발한 장치들이 아직도 철강 생산현장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에 후배들에게 뭔가 남겨줄 게 있다는 자부심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학생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여러분, 일본 올림푸스사의 수천만원짜리 렌즈도 마지막에는 장인의 손길이 없으면 나오지 않아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도 나대용이라는 손재주 뛰어난 군관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을 거예요. 항상 관찰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키우세요.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