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老대통령과 숙대 총장의 약속

이번 행사에는 와드를 대신해 아와 은디야 세네갈 문화여성생활환경부 장관이 참석한다. 그 밖에 중국 여성계 실력자인 천즈리 중국 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칸다 파비 잉 캄보디아 여성부 장관, 앤 세맘바 마킨다 탄자니아 국회의장 등도 온다.

"1906년 대한제국 황실이 교육구국의 뜻으로 세웠던 학교가 세계로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한 총장의 기대다.

숙명여대 행정관 6층 총장실엔 길이 25㎝ 남짓한 만돌린 모양의 악기가 있다. '코라(Kora)'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전통악기. 원래 나무로 된 악기에 은박을 입힌 미니어처다. 취임 3년을 막 지난 한영실(54) 총장은 요즘처럼 큰일이 닥쳤을 때 품에 안고 가는 줄을 튕긴다. '아시아·아프리카 여성 국제콘퍼런스'가 눈앞에 왔다. 6~8일 11개국의 여성 관련 귀빈들이 캠퍼스로 몰려온다. 이 지역 '여성의 지위와 교육, 그리고 임파워먼트'를 주제로 발표·토론이 이어진다. 학교로서는 근래 최대 규모 행사다. 그 중압감을 덜기 위해 코라를 타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세네갈의 '할아버지' 대통령 압돌라이 와드(85)다. "이번 행사도 2년 전 올드 프레지던트(노 대통령)와 영 프레지던트(젊은 대학총장) 사이의 약속에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지요."

한 총장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09년 11월 용산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노 대통령은 20시간 가까운 비행에 지친 기색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하면서 여성교육 공로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로 돼 있었다. 짧은 체류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와드 대통령은 떠나던 날 "한 총장께서 세네갈에 오시면 미션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작년 6월 한 총장이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대통령 공식 초청에 파격적인 국빈 대접이었다. 그곳 여성부 장관 안내로 현지의 유서깊은 생 루이 대학 여성 콘퍼런스에도 참석했다. 수도 다카르에서 차로 3시간 반 거리. 가는 길 좌우로 바오밥 나무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곳 실상에 목이 탔다. 떠나던 날 대통령이 말했다. "제가 주는 미션을 이해했나요?" 한 총장이 답했다. "그전까지는 우리 대학, 우리나라 학생들만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가 많아 재회를 자신할 순 없지만 우리 서로 미션을 다음 사람에게도 전해서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가 코라를 품에 안기며 등을 토닥였다. "눈으로 본 것은 금방 잊히지만 어릴 때 불렀던 노래는 그렇지 않아요. 집무실에 두고 힘들면 타 보세요. 우리 약속이 떠오를 겁니다." 한 총장은 와락 눈물이 났다고 했다. 회상하는 눈에도 물기가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