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울려버린 在美 이산가족

"여러분은 60년 동안 가족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제 그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4일 오후 미 의회 상원 덕슨빌딩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이산가족(Divided Families)'은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시사회에 참석한 미 의회 관계자 50여명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출신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는 30여분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북한여성이 자신을 남겨두고 월남했다 미국으로 건나간 오빠와 수십년 만에 재회한 뒤 오빠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거라도 어머니 곁에 묻어달라"며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었다는 사연이 소개되자 참석자 일부가 눈물을 훔쳤다.

재미(在美) 이산가족의 상봉에 대한 미 정부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이 다큐는 현재 하버드 대학원에 재학 중인 27세 동갑내기 재미교포 2세 제이슨 안(의대)과 유진 정(경영대학원)의 작품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6·25 때 북한의 가족과 생이별한 할머니·할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이산가족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특히 안씨는 2006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서 2년간 탈북자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미국내 이산가족 1세대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고, 귀국 후 정씨와 의기투합했다.

안씨는 "할머니가 위암으로 병원에 계실 때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여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일이 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동생을 만나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지만 결국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미국 내 많은 한인들이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기록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2009년부터 빡빡한 학업 스케줄을 쪼개고 잠을 줄여가며 워싱턴을 비롯해 뉴욕·뉴저지·버지니아·유타·캘리포니아 등 각지를 다니며 재미 이산가족 17명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았다. 정씨는 "미국내 10만여명에 달하는 고령의 이산가족 어르신이 오늘도 어디선가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고 했다. 정씨는 영화 제작 기법을 배우기 위해 애니메이션 영화로 유명한 '픽사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도 했다. 학생 신분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2009년 뉴욕에서 6·25 관련 행사를 열었을 때 교포들의 도움으로 2만달러를 모금해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미 의회에서 이산가족상봉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대표적 친한파 마크 커크 상원의원(공화·일리노이주)은 이들의 취지에 공감해 의회 시사회를 적극 주선했다. 커크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미국 내 이산가족들을 북한 가족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며 "오늘 제이슨, 유진 두 청년에 의해 이런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