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모아 정화하면 상수도만큼 깨끗"

빗물 활용 연구의 권위자로 '빗물 박사'란 별명을 가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55) 교수는 밤늦도록 연구실을 떠나지 않는다. 오는 17일 설치할 '16호 빗물 저금통'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15곳에 빗물 저금통을 설치했지만, 이번은 특별하다.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구제역 매몰지 부근에 사는 아이들이 빗물을 정수해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교생이 27명인 양도초교가 있는 강화군 양도면에는 지난겨울 구제역 사태 때 살(殺)처분된 가축들이 묻힌 매몰지가 있다. 상수도 없이 지하수를 정수해 쓰는데 혹시 매몰지 침출수가 섞여들까 걱정이다.

한 교수가 2007년 고안한 빗물 저금통은 빗물을 정화해 저장했다가 식수로 사용하는 장치다. 그는 "깨끗한 빗물도 지하수가 되는 과정에서 각종 오염 물질에 노출되지만 빗물을 정화하면 상수도만큼 깨끗하고 안전하다"며 "비가 100㎜ 내리면 1t 탱크가 가득 차는데, 이 정도면 전교생이 보름은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이번에 나선 것은 지난여름 인하대 특강에 왔던 양도초교 강희영(39)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 교수는 5년간 물이 부족하거나 지하수가 오염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빗물 저금통을 5개씩 설치했고, 이 공로로 올해 초 '서울대 봉사상' 첫 수상자가 됐다. 바로 그 상금을 양도초교 어린이용 빗물 저금통 제작비로 쓰고 있다. 그는 "빗물 저금통을 잘 활용하면 댐 건설·유지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