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중독도 마음의 허기 못 채워"

"어떤 중독도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하지요. 술 안 마시는 '단주(斷酒)'의 세계로 들어서면 인생에 새로운 즐거움의 문이 열립니다."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 소장 허근(56) 바르톨로메오 신부는 대대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3형제 신부 가운데 맏형이다. 그런데 군종 신부로 일하던 중 그만 알코올 중독에 빠져 버렸다. 주변의 도움과 기도, 입원치료를 통해 어렵게 술을 끊었다. 지금은 성찬례 때 포도주조차 마시지 않으며, 13년째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가족을 돕는 사목활동을 펴고 있다.

허 신부가 최근 이 센터 김지연 실장과 함께 '술! 술! 술! 더 이상 문제가 아니어요'(공동체)를 펴냈다. 허 신부는 "중독자에게는 자신이 중독됐다는 것을 부인(否認)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고통 속에 처한 그 가족에게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허 신부는 알코올 중독 치료 사목으로 시작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斷)중독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술, 도박, 인터넷, 약물 등 다양한 중독 문제를 다루면서 "마음의 변화, 가족과 함께 하는 노력"을 강조한다.

서울 중림동의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는 본인·가족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운영 등 일반적 상담치료센터의 역할 외에 재발을 막고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겠다는 단주 결의를 새롭게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분기별 단주자 피정(避靜)과 야유회, 연말 세미나와 '단주 지킴이 상' 수여식 등이다. 작년 말에는 단주에 성공한 70여명이 이 상을 받았다. 한 해 한 해 무사히 넘길수록 상장에 새겨진 단주 연수도 늘어난다.

이번에 펴낸 책에는 스스로 중독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또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 의학적 지식과 통계 자료를 제시해 중독을 극복하는 데는 철저한 단주(斷酒)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도 확인시켜준다.

허 신부는 "한국처럼 '술 권하는 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신앙인도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려면 먼저 수치심을 극복해야 해요. 하느님 앞에 내 잘못을 인정하고 내 안에 가장 더럽고 부끄러운 것들을 다 드러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지요. 더 이상 피하지 마세요. 중독 사실을 인정할 때 느껴지는 수치심을 이겨내는 것이 회복을 향한 첫 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