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를 움직이는 C레벨 임원들] 어렵고 딱딱한 보험에 인간미를 불어 넣다

11일 낮 삼성생명 강모 부장은 보험 상품에 불만을 품고 민원을 제기한 고객에게 전화해 "직접 찾아뵙고 불만 처리 과정을 설명 드리겠다"고 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전화를 받은 고객의 첫마디는 "미쳤어요? 갑자기 왜 이래요?"였다.

삼성생명 임원 및 부서장 160여명은 이날 전원 강 부장처럼 민원 고객과 약속을 잡느라 바빴다. 이달 말까지 민원 고객과 만나 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해결해줘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존재 이유인 보험사의 원칙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다.

백전노장 '보험맨'들을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게 하는 행사를 기획한 주인공은 변창우 삼성생명 마케팅 담당 전무(CMO·44).

삼성생명 최연소 전무인 그는 현대카드 마케팅본부장 출신으로 작년 12월 삼성생명에 스카우트돼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삼성생명으로 직장을 옮긴 후 8개월 동안 주력한 일은 변화에 둔감한 삼성생명의 '기업 DNA'를 바꾸는 일이었다.

변 전무는 우선 40~50대 계층을 위주로 했던 마케팅 대상을 20~30대 고객으로 바꿨다. 일례로 삼성생명은 그동안 안정감을 주는 중후한 캐릭터의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는데, 변 전무는 젊은 수영 스타 박태환 선수,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인기를 끈 가수 박정현·김범수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박 선수가 등장해 "삼성생명이 나의 비밀 무기"라고 소개하는 홍보 영상은 20~30대 고객들의 '동영상 퍼나르기' 덕에 무려 1200만명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옥 앞 광장에서 콘서트를 열어 딱딱한 보험사 이미지를 연성화했고, 청년층을 겨냥한 트위터, 페이스북 홍보도 대폭 강화했다.

삼성생명은 새 마케팅 전략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매년 줄기만 하던 20~30대 고객이 올 들어 6만명 늘어나며(총 217만명, 전체 고객의 26.8%) 증가세로 돌아섰다.

변 전무는 둔중한 사내 커뮤니케이션 문화에도 과감하게 메스를 대고 있다. 대리-과장-부장-임원으로 이어지는 3~4단계 문서 보고를 거부하고, 메신저와 이메일, 심지어 카카오톡으로 보고를 받고 담당자와 직접 대화하며 의사 결정을 한다. 변 전무는 "다른 금융회사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일"이라며 "보고 시스템을 바꾸자 직원들이 처음엔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더라"고 했다.

변 전무는 글로벌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현대카드·캐피탈로 자리를 옮겨 작년까지 브랜드관리실장·마케팅본부장을 지냈다. 그의 손을 거쳐 신세대 고소득층을 겨냥한 현대카드의 대표 브랜드가 속속 출시됐다. 깔끔한 외형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대히트를 친 레드·퍼플·블랙카드가 그의 대표작이다.

요즘 변 전무가 매달리고 있는 일은 딱딱하고 어려운 보험 약관 설명서에 인간미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변 전무는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인간적인 진정성을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서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찬 보험 상품 약관을 꼭 필요한 정보만 담아 그림과 디자인으로 화사하게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C레벨 임원

영어 직함이 알파벳 'C'자로 시작하는 최고위급 임원을 말한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전략책임자(CS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