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이 남진을 뽑다

독설(毒舌)은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그 어느 오디션 프로보다 팽팽했다. 10일 오후 일산 드림센터에서 열린 MBC 50부작 특별기획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공개 오디션 현장. 연출진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6명은 안경 너머로 지원자들의 면모를 꼼꼼하게 훑었고, 그때마다 연기 지망생 36명의 인생은 출렁거렸다.

이번 오디션은 올 11월 방송 예정인 '빛과 그림자'에 1960~70년대를 풍미한 가수·배우로 출연할 배우들을 뽑기 위해 열렸다. 남진·나훈아·하춘화·패티김·김추자 등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스타들의 얼굴을 대신할 배우다. '허준' '올인' 등을 쓴 최완규 작가가 극본을 맡은 '빛과 그림자'는 1960년대 미8군 무대로 데뷔해 각종 역경을 거쳐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서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다. 안재욱·남상미·전광렬 등이 출연한다.

제작진은 "통상 드라마에 출연할 배우는 제작진이 비공개로 발탁하지만 이번엔 노래나 춤, 만담(漫談)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배우가 필요해 아예 새 얼굴을 발굴하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고 했다. 지난달 말 진행된 공개 모집에는 300여명이 지원했다.

오디션은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 노래, 자유 연기, 지정 연기, 장기자랑 순으로 진행됐다. 지망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노래는 나훈아의 '고향역'과 남진의 '님과 함께'. 여성 지원자의 경우 섹시 댄스로 장기를 선보인 이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건반은 칠 수 있는지?" "키가 얼마나 되는지?" "(두 다리를 앞뒤로 쭉 뻗는) 스트레칭은 되는지?" "코러스 경험은 있는지?" "악보를 읽을 수 있는지?" 등을 속사포처럼 물었다.

오디션에 응한 지원자들의 면모는 제각각이었다. 통기타를 치며 빼어난 가창력으로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을 부른 32살의 한 남성 지원자는 얼굴이 익숙한 뮤지컬 배우 출신. 또 다른 지원자는 유명 아이돌 그룹 원년 멤버 출신이었다.

서른한 살의 한 남성 지원자는 복고풍 청재킷과 청바지, 빨간색 티셔츠를 받쳐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노래를 부를 때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는 등 액션이 유독 컸다. "7년간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다"는 그는 "남진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삶이 좋아서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했다.

지원자 중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들 중엔 방송사 공채 개그맨 출신이 많았다. 빼어난 유머와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오디션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든 29살의 한 개그우먼은 설레는 얼굴로 "왠지 느낌이 좋다"며 "앞으로 성동일 같은 '미친 존재감'을 가진 조연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열정적으로 춤과 노래를 선보인 한 여성 지원자(24)는 "김추자 선생님 역할을 하고 싶어서 머리도 일부러 이렇게 파마했다"고 했다.

이날 오디션에는 가수 남진이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데뷔 45주년 콘서트 공연 도중 다리를 삐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오디션장에 나타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우리 세대 가수들의 인생을 그린 시대극이라 기대가 크다"며 "그 시절 분위기에 잘 맞는 재능 있는 지원자들이 많은 것 같아 무척 기쁘다"고 했다.

유지훈 PD는 "이번에 뽑힌 연기자들은 실력만 되면 드라마의 주요 역할을 맡길 수 있다"며 "노래, 춤, 만담 실력을 갖춘 연기자들을 모아 드라마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여서 기대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