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이맛, 바게트에 된장 바른 맛

지난 10일 밤 서울 양재동의 한 녹음 스튜디오. 인디 밴드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이펙터(전자기타가 다양한 소리를 내게 하는 장치)를 걸자 사이키델릭 음악 특유의 '우우우우윙~'하는 소리가 귀를 찌르더니 주현미 특유의 구성지고 애절한 열창이 울려퍼졌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1988년 주현미에게 양대 방송사 가수왕을 안겨준 그해 최고 히트곡 '신사동 그 사람'이었다. 원곡(原曲)과는 다른 낯선 리듬에 주눅 들지 않고 노래를 끝낸 주현미가 특유의 보조개 팬 미소와 함께 "정말 신난다. 이런 게 음악 하는 맛"이라고 했다.

이어 '짝사랑' '눈물의 부르스' '추억으로 가는 당신'까지 늦은 밤 시작한 연습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밤새 '사이키델릭 록으로 편곡한 주현미의 히트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국카스텐 보컬 하현우가 특유의 높은 톤 샤우팅 창법으로 자기 노래를 '재해석'하는 것을 보며 주현미는 "멋지다"는 감탄사를 연발했고, 발을 구르며 가벼운 헤드뱅잉까지 했다.

앞서 지난 7일 같은 곳에서는 김수희가 록 밴드 '나티'와 함께 '헤비메탈 트로트'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다. 귀를 징징 울리는 전자기타 사운드에 맞춰 구성진 목소리로 '남행열차' '서울여자' '애모' 등 김수희표 국민가요들을 열창했다. 김수희는 "그룹사운드(블랙캣츠)로 가수 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풋풋하던 신인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록과 트로트의 만남'. 바게트 빵에 된장을 바르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종(異種) 음악'을 뭉치게 한 계기는 15일부터 서울 염리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마포문화재단의 기획 공연 '한국 대중음악의 여왕들, 젊은 인디를 만나다'. 70~80년대부터 가요계를 이끌어온 트로트 여왕(김수희·심수봉·주현미)들의 목소리를 실력파 후배 뮤지션들의 밴드 음악에 결합시켜 경계를 허물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예산과 규모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구청 공공극장이 기획한 공연이었지만, 제안을 받은 트로트 여왕과 인디 뮤지션들은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의기투합했다. 15일 주현미와 국카스텐의 무대를 시작으로, 22일 김수희와 나티, 29일 심수봉과 레게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무대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만나는 실험적 무대에 후배 로커들은 처음에 잔뜩 긴장했지만, 엄마·이모뻘 선배들이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준 덕에 연습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주현미는 국카스텐의 악보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부르라고 '따다다다' 음표가 적힌 악보만 봤는데, 세상에, 여긴 그냥 코드만 있어. 이런 게 음악이야!" 하현우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들려왔던 게 바로 선생님의 노래들이었다"며 "우리 편곡을 어떻게 보실지 걱정했는데, 칭찬해주셔서 기쁘다"고 했다. 김수희도 "헤비메탈 밴드와 공연한다고 하니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 크로스오버가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들은 음악으로 세대 간 소통을 이루고 싶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인디 음악은 얼핏 불협화음처럼 들려도 원초적이고 꾸밈없는 매력이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으로 선후배 세대가 어느 지점에서 하나가 될 겁니다."(주현미) "트로트를 저급하다고 여겨오던 사람들과 메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가교역을 하고 싶어요."(김수희) 5만5000~7만7000원. (02)3274-8500 www.mapoartcent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