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10] 수술 3년차 검사 앞두고 근심·걱정 시달려
입력 : 2011.10.13 23:05
"건강한 생활습관 갖고 긍정적인 마음 가졌지만
나도 역시 나약한 암환자
CT촬영·혈액검사 받으며 ‘재발’ 걱정에 스트레스 쌓여
우리 병원도 암환자 위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 갖췄으면"
10분 뒤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2008년 9월 수술하고 3년여 만에 다시 만나는 의사와 인사를 나누며 그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동안 지내 온 이야기를 짧게 나누는 사이,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저는 그의 표정을 봤습니다. 1초라도 빨리 검사 결과를 알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제게 컴퓨터 모니터를 보여줬습니다. "대장의 수술 부위도 좋고 다른 곳에 전이되지도 않았네요." 잔뜩 긴장했던 근육이 갑자기 풀어졌습니다. 의사는 간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아주 작은 물혹이 있는데 이전부터 있었던 거라 문제없고요. 피검사 결과도 아주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체중을 많이 뺀 것 같은데 잘했다" "피검사 수치가 아주 좋은 걸 보니 운동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며 덕담을 했습니다. 다음 진료 일정을 의논한 뒤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마음 상태는 들어갈 때와 정반대였습니다.
아내와 친구에게 휴대폰 문자를 보냈습니다.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ㅋㅋ. 막상 당사자가 되면 쉽지 않아요. 마음이란 게…. 그러니 사람이지. 신(神)이 아니고".
사실 검사 2주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오른쪽 갈비뼈 안쪽과 하복부가 저리고 쓰렸습니다. 갈비뼈가 아프기도 하고, 허리 통증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번씩 그런 느낌이 반복된 데다 기간이 좀 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사를 한 게 복부 CT는 작년 3월, 폐 엑스레이와 간 초음파는 작년 9월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긴 했지만 길어야 1주일 정도면 사라졌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배를 따뜻하게 해주고 잠자는 시간을 늘려 몸을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스트레칭도 조심스럽게, 운동도 조심스럽게 하면서 몸의 반응을 살폈는데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게 큰 스트레스가 돼 몸 상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퍼뜩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에 쓰지 못했던 휴가를 하루 냈습니다. 차를 몰고 경기도 가평의 한 계곡으로 갔습니다. 숲길을 걷고, 산 깊은 곳에 있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가선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 것입니다.
수술 후 3년 동안 죽음에 대해서 수도 없이 생각했고 마음 비우기 훈련을 끊임없이 했기에 어떤 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주 동안의 제 모습은 한없이 나약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암환자 대부분의 특징입니다. 늘 '재발'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시한폭탄을 안고 삽니다.
지난주부터 조선일보에 '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김의신 미국 MD앤더슨 종신교수는 "미국 환자는 암 진단을 받아도 태평스럽게 지내고 담대한데, 한국 환자는 근심 걱정이 많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한국과 미국의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사람은 인정이 많고 가족 중심적입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성취 욕구도 강합니다. 그래서 암환자가 되는 순간 많은 것을 잃는다고 여깁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여라" "낙천적으로 즐겨라" "긍정의 힘을 믿으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 끊임없이 비우는 연습을 하고, 긍정적이고 즐겁게 생활하려고 애썼던 저도 한순간에 무너질 정도니까요.
그러므로 개개인의 생활 방식 문제라고 외면하지 말고 의료계가 그런 정신적인 치유 프로그램도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수술과 항암·방사선 치료뿐 아니라 많이 웃고 긍정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한국 암환자의 완치율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